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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낙마 후 봉사활동 나가는 그녀는 아름다웠다[리더스]37년 봉사인생, 김 주 전)완도군의회 의원
박주성 기자 | 승인 2017.09.30 18:58
김 주 / 전)완도군의회 의원


우리는 보통, 어떤 고난과 역경이 오더라도 그 사람이 한길을 간다면 그 사람의 가치와 철학을 존중하고 인정하게 된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은 ‘진심’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어떤 외부의 구차한 공격도 통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의 길이 있을 뿐이다.
김주 전 군의원. 1981년 대한적십자 완도봉사회 입회, 1986년 대한적십자 청해봉사회 결성 초대회장 역임, 1986년 완도여성단체연합회 결성 멤버 참여, 최연소 총무 6년·부회장 6년·회장 5년을 역임하고, 37년을 ‘봉사’라는 한 길을 걸어왔다. 봉사가 필요한 곳이라면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여성, 노인, 장애인, 소년소녀가장 등을 대상으로 1981년 봉사단체에 입회한 이래 쉬지 않고 달려온 결과 봉사활동으로 받은 상만 해도 대한적십자사 총재상, 도지사상, 여성부 장관상, 행정안전부 장관상 등 수두룩하다.
그래도 뭐니뭐니해도 그녀를 돋보이게 만든 건 2014년 지방선거에서 군의원에 낙마하고도 봉사활동을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이었다.
군의원 낙마로 마음이야 오죽했으랴! 그러나 자신의 낙마로 오히려 안쓰러워하고 눈치를 보는 봉사단체 회원들에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참여 회원들을 챙기는 모습이란 자신의 반평생보다 더 많은 봉사활동을 해 온 여장부처럼 기개로웠다.
군의원 의정활동 4년보다 몇 배나 더 봉사활동에 전념하며 지역봉사활동을 이끌어 온 김주 전 완도군의회 의원을 만나 봉사와 여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 봤다.
 

봉사활동을 시작한 계기가 있었나?
우리 어머니가 그 옛날에 부녀회 활동을 하셨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주위 권고가 있어서 1981년 대한적십자 완도봉사회에 입회한 것이 봉사활동의 시작이었다.
여성봉사활동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지금은 건물이 없지만 1989년 도서관 입구에다 여성단체협의회 사무실(여성단체회관)을 지었을 때 이영희 회장과 둘이 기금을 마련하느라고 서울에 다니면서 고생을 많이 했다. 하지만 1991년부터는 그곳에서부터 장구나 에어로빅 등 여성문화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완도여성단체 역사 속에서는 뜻깊은 활동으로 여기고 있다.
완도여성단체협의회장직을 맡았을 때는 11개 단체, 2천여명의 회원으로 단체와 회원이 많아져 건물이 좁아졌다. 사무실·교육장을 마련하기 위해 국회의원과 도지사 면담을 통해 예산을 확보해 지금의 군청 앞 종합복지회관을 건립했다. 봉사활동으로 다져진 완도여성의 힘을 모은 결과였다.

IMF때 여성봉사단체의 특판활동이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기여를 했다고 하던데.
IMF 때 완도경제가 어려워지자 특판활동을 처음으로 시작했다. 정말 그때 전국을 안다니는데 없을 정도로 돌아다닌 것 같다. 그때는 밥도 안사먹고 물만 그 지역에서 사먹었다. 통나물 한통, 가스까지 다 완도에서 가져가서 특판하는 공무원들 밥 다해주고 그렇게 했다. 목이 다 샐 정도로 얼마나 완도특산품 홍보를 했는지 모른다. 지금은 어려운 시기도 넘어가고 계속 이어지고 있지만 한군데 정도 다니는 정도다. 진짜 건어물업체들에게 연결을 많이 해줬던 것 같다.

봉사활동의 대상과 주요 활동내용은?
어르신들과 소년소녀가장, 장애인 등이 주요 봉사대상인데, 어르신들에게는 노인회관(종합복지회관)에서 매주 목요일 식사를 대접해 드리고 있다. 소년소녀가장에게는 반찬 배달봉사나 가정 돌봄, 옛날에는 집에 다니면서 통장관리까지도 해줬다. 장애인은 집 청소를 해줬다. 

약 40년 봉사활동 해왔는데, 자신에게 봉사란 어떤 의미인가?
봉사란 남을 위한 게 아니라 정말 나를 위한 것이다. 나한테 기쁨이 더 많다. 나는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봐왔기 때문에 진짜 이 자리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 말하자면...(눈물) 내가 힘들 때가 있었다. 44세때 남편도 빨리 잃고, 애들이 어려서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때  봉사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이겨냈다. 나보다 어려운 사람이 더 많았다. 나보다 어려운 사람이 더 많은데...그런 생각을 하니 나의 어려움 처지를 이겨낼 수 있었다.
또한 2008년 암 선고를 받아 수술하고 8개월 항암치료를 받았던 병원생활을 할 때도 그 어려운 사람들 많이 봐왔는데... 왠지 마음 든든하고 회복하는데도 봉사활동 통해 얻어진 경험이나 그런 곳에서 감동을 받았던 것들을 생각하니 회복도 빨리 된 것 같다.

완도 여성봉사활동의 현주소는?
우리가 처음 봉사할 때 마음에서 우러나는 봉사를 많이 했다.
지금도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같이 울고, 같이 일하고, 같이 먹고, 씻겨주고 했는데 지금은 관에서 봉사활동을 많이 하니까 우리가 초창기 봉사활동을 시작할 때와 봉사 개념이 조금 달라졌다고 본다.
반면, 또 많은 사람들을 봉사할 수 있게끔 관에서 하니까 더 좋고 시스템화된 것은 긍정적인 면이라고 본다. 우리 완도 여성단체가 1970년대 박문진 여사 등의 노력으로 다른 시·군보다 빨리 시작해 잘해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 다 같이 가는 날까지 계속 봉사했으면 좋겠다.
 

박주성 기자  pressman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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