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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치열함은 문득문득 파도의 꽃이 되고

[가을특집]가을, 완도 그리고...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7.10.24 23:45
  • 수정 2017.10.24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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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바닷길이 열리는 노화읍 노록도의 붉은노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운동화가 퍽이나 자유롭다. 발을 쭉 뻗어도 닿지 못할 거리의 한 짝을 향해 깨금발을 콩콩인다. 좁아빠진 현관에서 신발 짝을 찾느라 종아리 근육에 핏대가 서는데 일상에서 제자리 찾기란 또 얼마나  힘겨운 일인가.
긴 연휴 끝에 다시 펼쳐질 내일이 아득한 이유다.
지난 몇 주간의 무질서 했던 대소사를 떠올리며 부끄런 기억들 묻혀가는 어스름 속으로 걸음을 내딛는다.
해안가는 여름내내 북새통이었다. 삼삼오오 모여앉은 사람들의 목청은 뜨거웠고 쉴새없는 젓가락과 입질에는 고추장같은 붉은 생활이 질기게 씹혔다.
저 노록도의 붉은노을처럼.
그 날 그 날의 일상들이 슬픔과 짓이겨져 목울대를 울리거나 식도를 따라 울컥울컥 넘어가기도 했다.
때로는 불꽃놀이의 화약처럼 일시에 폭발하는 즐거움이 되기도 했었다.
좀처럼 식지 않을 것 같던 열기가 몇 번의 썰물에 씻겨 기염이 가라앉자, 이내 바다의 온도도 낮아졌다.
이윽고 바다도 몸과 마음의 색깔을 바꾼 것이다. 명징한 불빛들 가을 밤바다 위에서 더욱 깊어진다.
바람도 없건만 끝없이 흔들리며 산란한다.

제 모습을 갖는다는 건 끝없는 흔들림이다. 지상의 높이만큼 경계를 넘어 바다로 내리 꽂히는 불기둥이 물비늘을 품어 안고 아슬아슬 떤다. 퍼지고, 반사하고 일부는 스며들면서.
지상의 빛과 가파른 높이를 안으로 끌어안고 제가슴에 무지개를 띄우며 스스로를 어루만진다.
어쩐지 비바람 몰아치던 밤 폭우를 견디며 바람과 맞서던 새들이 그 물에 몸을 씻더라니...
만물에 깃든 정령들도 실은 아주 많은 떨림 속에서 자신을 찾고 꽃피우고 지켜가나보다.
오랜만의 저녁 산책에 비릿한 물냄새와 화려한 물그림자로 마음이 평온해 나날이 늘어가는 불안과 근심덩이 내려놓으니 콧바람도 화음을 탄다.
여름으로부터 멀어진 생각이 가을 가까이로 와 가장 깊숙한 곳을 찌른다. 그 복판에서 자신과 겨루며 모은 모래알만한 기쁨들이 바다를 채우고 어제의 치열함은 문득 문득 파도의 꽃이 된다.
머지않아 그 기억은 흐르는 것들 끼리끼리 뭉쳐져 저마다의 세계에 쌓여갈테고, 견뎌낸 시간 만큼 땡볕을 축척한 사유는 상처를 굳히고 물그림자의 진하기로 안쪽까지 번져갈 것이다. 바다도 사람도 침잠속에서 앓은 만큼 깊어질테니까.

이지윤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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