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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 끼웠던 책갈피 진실한 가을이다

[완도의 자생 식물] 20. 단풍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17.11.06 11:22
  • 수정 2017.11.06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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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에 따라 옷을 입는 자연에서 우리의 마음도 옷을 입는다. 이른 봄에 새순은 순한 마음이 자랄 수 있도록 돕는다. 봄은 온유한 마음을 갖지 않고서는 진정한 봄을 느낄 수 없다. 봄은 마음에서 미리 준비해야 온전히 맞이할 수 있다. 그 기다림은 봄의 길이를 늘일 수 있다.

그래서 기다림은 외롭지 않다. 5월이 되면 연초록의 순한 잎들은 꽃물결보다 더 아름답다. 그래서 시인들은 초록꽃이라고 부른다. 그 연한 꽃잎들은 강한 햇빛을 받고 엽록소를 만들어 녹음의 계절, 여름을 맞는다. 엽록소를 많이 함유해야만 가을에 이르러 단풍이 들 수 있다. 어느 작은 부분이라도 변한다는 것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사람과 같으면 노동이다.

가을에 이르러 오색단풍은 여름에 엽록소를 많이 만들었던 결과다. 녹색 식물들은 잎 속에 엽록소라는 색소를 가지고 있다. 이 색소 때문에 녹색 빛을 띤다. 녹색 이외에도 카로테노이드라는 주황색 또는 노란색을 내는 색소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봄여름의 대부분은 엽록소의 힘이 나타나지만 기온이 내려가고 낮의 길이가 짧아지므로 엽록소가 분해되면서 카로테노이드 색소가 드러난다. 또한 안토시아닌이라는 붉은색을 띠는 화학색소도 영향을 미치게 한다. 오색단풍이 드는 이유는 각 색소 농도의 차이에 따라 잎의 색깔이 달라진다고 한다. 5월 연초록은 온 세상을 초록꽃으로 만들더니 가을 단풍은 뼛속까지 스며들어 황홀하게 취하게 한다. 계곡물 소리와 단풍은 잘 어울린다. 이것은 그 어떤 화가도 화폭에 담을 수 없다. 직접 그 자리에 향유할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선율이 되고 만다. 삶은 연극처럼 예행연습이 없다. 매순간마다 실전이다. 지금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내 앞에 있는 가을은 평생 다시 오지 않는다. 숙명처럼 스쳐 지나가는 가을이 아니라 반드시 느끼고 가야 할 당위다. 전체적으로 가을 보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가을 느끼고 싶다. 내 바로 앞에 단풍잎 하나라도 자세하게 보는 데에는 순간 지나가는 가을을 소중하게 여기고 싶어서이다. 갑자기 일을 하다 말고 “단풍구경하러가자”고 하는 이들은 오늘이라는 시간을 소중히 간직하고 싶은 모양일 것이다.

지난날에 책갈피에 단풍잎을 끼웠다. 끼어두었던 단풍을 까마득히 잊고 있다가 그 단풍잎을 보고 지난가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겠지만 그 가을은 그때일 수밖에 없다. 단풍잎을 끼워두는 행위 자체가 진실한 가을이다. 가을 한가운데에서 단풍잎 하나 뚫어지게 보는 일은 올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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