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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자 열매는 마음과 마음이 만난다

[완도의 자생 식물] 27. 치자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17.12.09 16:18
  • 수정 2017.12.09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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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한밤중에 치자꽃 향기는 막혔던 가슴을 시원하게 뚫는다. 한번 스쳐가는 향기인데도 영원히 기억되는 꽃이 치자꽃이다. 꽃은 단잎으로 소소하게 피면서 그리 수다스럽지 않고 단아한 모습이다.

집안 뜨락에 한 그루쯤 심어 습도가 많은 여름 날씨에 쾌청한 분위기를 만든다. 산속 깊은 산사를 찾으면 치자꽃 향기가 먼저 맞이한다. 옷깃만 스치는 사람 사이에서 치자꽃 향기는 잊을 수 없는 관계일 수 있다. 치자꽃 향기 옆에 그 사람이 좋은 일이든 슬픈 일이든 기억된다. 아마 슬픈 일이면 세월이 흘러 넘실대는 강물이 되었을 것이다. 필 때와 질 때 모습은 달라도 향기는 변함이 없다.

아니, 떨어진 꽃잎에서도 향기가 난다. 나이가 들면서 변한다. 변함에는 진정한 내면을 위함이다. 주객이 전도되는 변함은 그 사람만의 향기가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다. 치자, 비자, 유자는 남도의 삼자라고 부른다. 치자는 기후가 온난한 해안지대를 좋아하는 상록수이며 잎은 광택이 있고 7월에 피는 백색 꽃에는 짙은 향기가 있어 아름다운 조경수로 각광받고 있다.

11∼12월에 따내는 붉은색의 치자 열매는 무공해 천연염료이다. 소변이뇨작용, 치질통증, 불면증, 황달, 편도선염, 무좀에 좋다는 효능이다. 특히 다린 물을 먹으면 혈액살균작용을 해 다른 세균이 살 수 없어 혈압에 좋다고 한다. 지난여름에 주위를 맑게 만들었다. 코끝에서 맴도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느끼한 것이 치자꽃 향기다. 그 진한 향기가 이제 빨간 열매로 함축해 놓는다. 여러 가지 삶의 내용을 한 편의 시로 응축해 놓았지만 보는 즉시 풀어 낼 수 있는 여지도 남겨져 있다.

치자꽃 열매는 어느 곳에 있든지 아름답다. 장독 옆에 야윈 햇볕을 받고 있어도 정겹다. 실로 꿰어 석가래에 매달려 놓은 것도 소품스럽다. 툇마루에 가지런히 놓아있는 것을 보면 어머니의 마음을 보는 듯하다. 각각 어머니의 생각대로 놓았지만 따뜻한 마음이 피어오르는 것은 똑같을 것이다. 치자 향기가 살갗으로 통했다면 치자 열매는 마음과 마음이 맞닿음이다.

시루떡에 물감 들이는 데에도 치자로 했다. 주로 먹는 음식에 색깔을 넣었기 때문에 어머니의 마음이 연결되어 있다. 주황색 띤 치자열매는 어디에 놓아도 소품이 된다. 그러나 그 이면에 담겨있는 진실한 마음이 함축하고 있었기에 아름다운 빛이 나오는 것이다. 꽃이 피고 지고 열매가 사람들 손에 오기까지 그 나름대로 희로애락이 있었다. 이것이 서로 오고 가는 정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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