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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는 꽃의 독창성

[완도의 자생 식물] 33. 개불알꽃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8.01.21 17:47
  • 수정 2018.01.21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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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꽃들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름 없는 꽃들은 내 곁에 있었다. 그러나 마음의 눈에 띄지 못해 보이지 않았던 것뿐이다. 실제 꽃들은 자기 이름이 있다.

그러나 이름을 달지 않는 데에는 소박한 삶이다. 누구의 돌봄도 없이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단다. 화단에 꽃들과 비해 이름 없는 꽃들은 경제적 가치가 제로다. 때로는 농부들에게는 귀찮은 존재다. 그러나 풀 한포기 없는 세상은 상막하다. 부모, 주위의 사람들이 자연의 나이로 아니면 사고로 세상과 이별을 했다. 산다는 것은 하나 둘씩 없어짐을 경험한다. 점점 소유할 것이 없어진다는 것과 다름없다. 어느 날 이름 없는 꽃들이 찾아오는 것도 연약함에서 비롯된다.

몸이 나약해지므로 마음은 부드러움으로 채우라는 뜻도 있을 거다. 자기들끼리 수다스럽게 피어 있지만 햇빛 하나만으로 옷이 되고 이불이 된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다. 때로는 강인함을 보여 주기도 하고 연약한 눈물도 흘리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이름 없는 꽃들을 꼽으라면 개불알꽃이다. 이른 봄에 함께 모여 핀다. 양지바른 곳에선 1월에도 꽃을 피운다.

햇빛이 꽃에 닿으면 꽃잎을 연다. 이른 봄에 피는 들꽃들은 이렇게 아슬아슬한 햇빛으로 핀다. 봄을 제일 먼저 알린다고 하여 봄까치꽃이라고 부른다. 이름이 쌍스럽기는 하나 옛사람들은 해학적인 면도 많다. 이 이름은 민초들이 지었지 않나 생각된다. 탈을 쓰고 양반 사회를 비꼬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꽃은 매화꽃이 필 때 절정을 이른다. 땅에서도 수많은 별빛이 되어 맑고 투명한 언어를 만든다. 개불알꽃은 키가 작아 다른 들꽃과도 잘 어울린다. 수많은 청록 꽃 위에 냉이꽃이 봄바람에 흔들어 대면 반가운 손님을 맞는 기분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땅을 걸었고 지나왔다. 그러나 빔과 없음이다.

빈 들판에 혼자 서 있다는 생각뿐이다. 어느 날 이름 없는 꽃들을 발등 앞에서 만나게 됐다. 순간순간 만남이 이어져 선상 위에 독창곡을 만들어 주었다. 산다는 게 지난다는 뜻도 되겠지만 이제 멈춤이다. 이름 없는 꽃들 앞에 쪼그려 앉음이다. 무엇을 소유하려고 주먹을 쥘 게 아니라 부드러운 손에서 마음을 충전시키는 일이다.

오히려 내가 이름 없는 꽃이 되게끔 바라는 것이다. 가장 낮게 핀 개불알꽃이 그러하듯이 낮아지고 낮아지면 진정한 마음의 자리가 생기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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