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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

[무릉다원, 은선동의 차 문화 산책 -5]김우영 / 완도차밭 청해진다원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8.03.11 07:15
  • 수정 2018.03.11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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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과 설명절이 지나자 포근한 기운이 대지위에 가득하다. 봄을 알리는 단비로 대지를 적시고 겨우내 얼었던 대지가 녹아 물이 많아진다는 우수도 지났다. 마음이 바빠진다. 서서히 농사의 시작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다원 농사의 계획을 구체적으로 점검하고 찻자리에 앉아 맑은 차향을 음미하며 한 편의 시상에 젖는다.

한잔의 차가 하루의 시작을 열어준다.

이른 선미(禪味)가 채 가시기 전에 다석(茶席)에 앉으면, 영롱한 아침햇살이 온몸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행다(行茶)의 동선(動線)은 삼매(三昧)의 춤사위도 부럽지 않다.

오롯하게 머물러 움직이는 눈 길 따라 삼세(三世)를 통한 나의 영식(靈識)이 흐르고, 피어오르는 다향(茶香)은 삼천대천(三千大千)에 가득하나니겨드랑이의 바람이 절로 일어남을 바로 이와 같다 함이로다.

여보시게, 벗님네여!
차 한 잔 드시게나!
한 잔 차에 이렇듯 여여(如如)함이로니...

어느 날, 이른 아침 찻자리에 앉아 문득 떠오르는 감회를 옮겨 적고 제목을 “차 한 잔”이라고 정한 한 토막의 글이다.

벌써 그 시간은 지나갔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희유의 시간이지만, 이제는 그 느낌마저 내 삶의 그림자로 남아 잔잔하게 추억된다. 내게 주어진 삶이 그러하듯, 머나먼 시간속으로 홀연히 홀로 여행을 나서는 것처럼, 그렇게 지나가고 있다.

찻자리가 그렇다. 너 나 물아의 경계를 놓아내고, 이미 혼연의 하나이듯. 세상속에서 다시 돌아와 차 한 잔 움켜쥐고 세상을 살며시 내다본다. 그저 우두커니 서있는 풀과 나무들은 사이 사이로 바람이 건네는 이른 봄소식을 무언의 춤사위로 흐느적거린다.

어느새 차향은 시방에 가득 피어나고, 하늘이도 시샘하듯 나란히 내려앉는다. 그리고, 창 밖 한 켠의 작은 언덕에 모여 앉은 화초들도 저마다 재잘거리며 다가와 안긴다. 내 홀로 즐기는 고요의 찻자리 앞으로. 그들을 위해 잔 하나 살며시 내어 놓는다.

  차 한 잔의 향연!
  차 한 잔이 참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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