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홍콩 사법 견문록

[완도 칼럼]정병호 /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원장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8.03.23 16:29
  • 수정 2018.03.23 16:34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병호 /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원장

지난 겨울 홍콩을 다녀왔다. 법학전문대학원 협의회에서 전국의 로스쿨 원장들 연수 행사 였는데, 방문지로 홍콩을 택한 이유는 우리나라의 사법시스템과의 차이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대륙법계(유럽대륙의 독일, 프랑스의 법률문화)에 속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홍콩은 영국의 보통법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홍콩은 1997년에 중국에 반환됐지만, 홍콩기본법에 따라 2047년까지 50년간은 반환전과 같이 영국 보통법(common law)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게 돼있다. 홍콩은 아시아의 법률문화의 관점에서 보면 보석 같은 존재다. 잘 발달된 영미법을 영국, 미국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서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맨 먼저 방문한 곳은 홍콩대 로스쿨이었다. 홍콩대는 2018년 더타임즈의 세계대학순위 40위를 차지할 정도로 세계적인 명문대다(서울대는 74위). 대학정문을 들어서면서 처음에는 너무 비좁아서 답답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니, ‘어떻게 이렇게 좁은 땅에 이처럼 훌륭한 건물을 지을 수 있었을까’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주위 경관을 최대한 포용하면서도 사람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었다.

건물 안에 큰 길(메인 스트리트)을 만들어 놓아 밖으로 바다를 감상할 수 있다. 학교의 표어가 명덕격물(眀徳格物)이다. ‘덕을 밝히고 사물의 이치를 탐구한다’. 동양고전인 대학의 구절을 딴 것인데, 서양의 대학제도를 수용하면서도 동양의 정신을 바탕으로 삼는 점이 정말 맘에 들었다.

홍콩대 로스쿨은 명성에 걸맞게 도서관, 강의실 등 시설이 대단히 훌륭했다. 도서관을 최신식으로 신축했는데, 도서열람실에는 소파까지 배치돼 카페에 온 것인가 착각할 정도였다. 교수·학생이 강의·학습 자료들을 편집할 수 있는 영상편집실까지 갖추고 있었다. 도서관 운영 방침이 이용자 중심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홍콩에서는 시험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 변호사를 양성한다. 4년 과정의 법학사 또는 2년 과정의 법학석사 학위 취득 후 1년 과정의 실무연수과정을 이수해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다고 한다. 특이한 점은 변호사자격 취득을 위한 실무연수 프로그램 운영도 대학이 주도한다는 점이다. 실무연수 프로그램은 금융법, 국제중재, 국제사법 등 강좌를 갖추고 있었다. 국제도시의 법대다웠다.

법대학장도 국제적인 인물이다. 말레이시아 출신 중국인인데, 미국과 영국에서 공부했고, 몇 년 전에 홍콩대로 초빙됐다고 한다. 교수들의 출신지가 17개국이라는 설명을 듣고, 홍콩대 법대의 국제적 위상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홍콩대를 비롯하여 홍콩시티대학, 홍콩중문대학 3곳의 법대에서 1년에 약 650명이 졸업하고 대부분이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다고 한다. 시험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 법조인을 양성하는 셈이다. 7백 50만 인구에 비해 변호사 수가 많은 것이 아니냐고 물으나, 법대학장은 오히려 국가, 기업 등에서는 변호사가 수요가 많으니 1000명 이상 뽑으라고 아우성이라고 한다.

홍콩사람들 같으면, 우리나라도 한 해에 한 6000명 뽑으라고 할 것이다. 우리도 교육을 통해 법조인을 양성하자고 10년 전 로스쿨을 도입했다. 그러나 올해는 합격률이 약 50%로 떨어진다. 다시 과거처럼 시험을 통한 선발로 돌아간 셈이다. 그런데도 변호사협회에서는 법률시장이 포화상태라며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를 줄이기 위해 혈안이다. 그러나 변호사는 자격일 뿐이다. 취업을 위한 보증수표가 아니다. 변호사협회가 눈앞의 조그만 이익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사법의 먼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좀 가졌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완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