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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특집]봄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8.03.24 13:07
  • 수정 2018.09.26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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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봄이 밀어 올린 꽃대인지, 나무가 피워내는 꽃대인지 무슨 상관이냐만은 나는 또, 왜 떨리는지! 그 꽃대 위로 한 마리 나비가 날아드는 일일뿐인데 내 심장은 또, 왜 아득해져만 가는 것인지... 꽃이 피어나는 일인지, 그대 향한 그리움이 피어나는 일인지 아님, 애초부터
나의 일이었는지... 이 봄은...
 


퇴계.
이황으로 말할 것 같으면, 조선시대 통치이념이면서 우주의 질서와 인간의 정신과 마음을 깊이 연구했던 학문인 성리학을 완성시킨 대가로써, 오늘날 보수 진영의 이념을 근거하는 영남학파의 거두이자, 우리나라 천원짜리 지폐의 주인공일 정도로 우리 국민들이 성인처럼 존경하는 학자다.

젊은시절, 학문에 빠져 있던 퇴계에게 결혼을 하라는 노모의 성화는 극심했다. 성인이 한참이나 지난 스물 하나의 나이, 퇴계는 결국 진사의 딸 허 씨와 결혼했으나 부인은 6년 후 두 아들을 남긴 채 죽고 만다.

홀아비로 3년여를 지내다가 존경하던 권질의 간곡한 부탁에 그의 딸인 권씨를 맡았지만, 권씨 부인은 정신착란증세가 있었고 퇴계는 이를 16년 동안이나 참으며 예를 다해 부인을 아꼈다.
벼슬에 나아가기를 좋아하지 않고 학문과 제자 양성에 힘썼지만 둘째 부인과의 사별 후, 2년이 지난 48의 나이, 조정의 성화에 못이겨 단양군수로 가게 되는데, 이곳에서 퇴계는 18세의 아리따운 기생 두향을 만나 9개월 동안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두향은 단양 출신으로 어려서 조실부모한 후 관기가 되었는데 아름다운 몸매에다가 거문고와 시문에 능통했다.

특히 난을 키우고 화분에 붉은매화를 키워 꽃을 피우는 일을 아주 잘했다.

두향은 퇴계가 매화를 좋아함을 알고 어미가 죽기 전 애지중지 키우다가 물려준 매화 화분 하나를 퇴계의 처소에 갖다 놓게 되는데, 그것을 본 퇴계.

자신의 마음을 읽어내는 두향의 마음에 서서히 마음을 열리면서 사랑이 싹트게 되는데... 허나 두 사람의 사랑은 9개월의 짧은 사랑이었다.

물론 서로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한결같아 두향은 퇴계가 떠난 뒤 관아에 신청하여 면천을 받고 종신토록 수절하게 되는데...

내일이면 풍기군수로 떠나는 퇴계를 정성스레 모시는 두향.
늦은 밤 삼경에 이르자, 속치마를 벗어 퇴계에게 내민다. 언제 또 볼 지 모르니, 시 한 줄 써 정표로 달라는 말. 퇴계 또한 말없이 붓을 들어 두향의 속치마에...

죽어 이별은 소리조차 나오지 않고
살아 이별은 슬프기 그지 없더라

그리운 님이 떠난지 20여년. 두향의 나이는 어느 덧 38세, 그때 퇴계는 68세였다. 두향은 직접 키운 붉은매화 화분 하나를 이십 년 전, 전별시를 써주었던 그 속치마와 함께 퇴계에게 보낸다. 두향의 속치마를 받게 된 퇴계는 그제서야 전별시를 완성하는데...

서로 보고 한 번 웃은 것,
그것은 하늘이 허락한 것이었네
기다려도 오지 않으니
봄날은 이제 다 가려 하는구나!
 
그 후 퇴계가 죽자, 두향은 퇴계와 함께 거문고를 타고 시를 노래하던 단양의 강선대에서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하기에 이른다.

정말, 두 사람의 사랑이 어쩌면 저리도 애틋하고 아름다운가! 붉은매화. 우리 고장에서는 남망산에 자리한 신흥사의 붉은매화가 일품이다.

저 맹렬하게 폭풍치는 듯한 암꽃과 숫꽃의 떨림. 검붉게 물들어 가는 황홀한 축복으로 피어나 그 한송이로 세상을 온통 불타오르게 하는 순결한 기쁨으로.

이 환희의 떨림에 순수한 붉음의 향기에 붉디 붉게 다가오는 저 가녀린 떨림이란...
아, 나의 가슴이 너의 떨림으로 모두 녹아 내릴 것 같은데... 존재가 존재를 만나 경이로운 시공간에서 완전한 합일이 되는 그 축복과 환희의 순간!

붉은매화란 오로지 붉은심장으로만 보고 듣고 느끼는 마법의 꽃과 같다.
퇴계가 죽는 마지막 순간에 붉은매화에 물을 주어라 했던 이유. 그건 두향에게서 느꼈던 생의 최고의 순간이기도 했다!

나의 떨림과 너의 떨림이 용해 되는 그 순간... 여보, 당신은 나에게 그렇게 왔어요.
여보, 미안하고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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