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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과 벚꽃 사이

[완도 시론]정택진 / 소설가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8.03.24 17:15
  • 수정 2018.03.24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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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택진 / 소설가

"악아, 울지 마라. 해나 못 보고 가믄 어차까 했는데, 그래도 이라고 너를 보께로 맘이 좋다. 인자 편안하니 길을 갈 수 있것다. 인자 얼굴 봤으니 어여 가니라."

어미의 손을 잡고 엎드린 아들의 등거리가 몹시도 쿨럭거린다. 한참을 그러고 있던 아들이 주춤거리며 일어서더니 몇 번을 뒤돌아보며 문턱을 넘는다. 아들은 토방에 선 채 어미를 지그시 내려다본다. 그러더니 이윽고 지겟문을 닫는다.

아들을 따라가던 어미의 눈길을 하얀 창호지가 닫는다. 어미의 눈길이 천장으로 올려진다. 너덧 숨을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던 어미가 울음 섞인 소리를 흘려낸다.

"아들아, 아들아, 사랑하는 내 아들아. 장손 집에 시집 와 딸만 줄줄이 싯 낳으께로, 천하의 죄인인 양 땅만 보고 댕기다가, 어찌어찌 너 낳으니 세상 다 얻은 것 탁했는데, 그라다가 니 아래로 아들 한나 더 낳으께, 그때사가 고개 들어 하늘 파란 줄 알었는디, 그런 너를 인자 마지막으로 보것구나. 이승에서 너랑은 이것이 끝인 성 부르구나. 아들아, 내 아들아, 사랑하는 내 아들아."

숨을 고르는지 동안이 좀 있다. 그러더니 어미가 다시 곡조를 잇는다. 노래인 듯 흐느낌인 듯, 곡조는 느루느루다.

"모진 시상었다마는, 그래도 느가부지랑 느그들 있어 잘 젼뎠구나. 느가부지 몬침 가고 잔 쓸쓸은 했다마는, 느그들 의지해서 잘도 넘었구나. 홀엄씨로 다섯 키우는 게 비매이 했것냐마는,
그래도 느그들이 다 사람들한테 치사들으께, 나는 그 재미로 고단한 것들 다 잊었니라. 몸은 뻐체도 마음은 마냥 행복했니라."

어미의 얼굴에 살풋 웃음이 스쳐간다.

“그런 느그들이 다 장성해서, 떡하니 세상에서 살고 있으께로, 이 에미는 안심하고 갈 수 있것구나. 내 새끼들 이라고 남들 보라고 사는데, 내가 세상에 뭔 미련이 있것느냐? 긍께 이 에미 간다고 너머 서러 마라. 언젠가 한번은 다들 가는 길 아니드냐.”

어미가 지긋이 눈을 감는다. 파르르 떨리는 눈가로 물기가 돋는다.

"내 펭생 불르던 이 노래도 인자 더는 못 부를 성 부르구나. 이 노래도 인자 영영 안녕이것구나. 그러니 우리 새끼들한테 한번 불러줘야 쓰것구나. 이 에미 노래 마지막으로 불러줘야 쓰것구나. 새끼들아, 내 새끼들아."

목을 가다듬기라도 하는지 어미의 동안이 좀 뜨다.

"헤일수 없는 수많은 밤을"

노래라기보다는 흥얼대는 독백만 같다. 그 곡조가 느럭느럭 이어진다.

“내 가슴 오려내는 아픔에 겨워”

어미의 눈가로 주르르 눈물이 흘러내린다.

"가신님은 그 언제 그 어느 날에“

어미가 눈길을 돌려 지겟문을 치어다본다.

“외로운 동백꽃 찾아오려나"

흘러내린 눈물이 베갯잇을 적셔간다.

마당가에는 선짓빛 동백꽃이 뚝뚝 목을 꺾고, 어미의 소리는 붉은 꽃에 실려 땅에 떨어진다. 떨어진 꽃보다는 달려 있는 꽃이 아직은 많다.

길굼턱을 돌아가는 만장의 행렬 위에, 봄으로 들어가는 오색의 꽃상여 위에, 희하얀 꽃잎들이 분분히 흩날리고 있다.

동백꽃은 다 졌고, 산이고 들이고 벚꽃들 천지다.
세상은 떨어지는 것에서 날리는 것으로 옮겨와 있다. 벚꽃들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사이에, 누군가가 하얀 꽃잎들을 지나 붉은 꽃이 떨어진 곳으로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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