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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두개 다 내금딸 먹어라

[에세이-모도에서]박소현 / 모도보건진료소 소장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8.04.28 10:05
  • 수정 2018.04.28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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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현 / 청산 모도진료소장

자취를 한 지 어느덧 이십여 년이다.
나는 혼자 살면서 힘에 부치면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있다가, 살아봐야지 이겨내고 버텨야지 생각이 들면 생닭을 한 마리 산다.
그러고는 할 줄도 모르는 닭볶음탕을 해서 이틀 삼일에 걸쳐 한 마리를 먹는다.
누군가 그러더라. 나이가 들면 입맛이 한 번 변하는 순간이 온다고.
나는 어릴 적에 즐겨 먹던 새콤한 과일 대신에 그저 한 가지 맛을 지닌 수박이나 배를 이젠 즐겨 먹는다.

엊그제 멀리 출장을 다녀오는 길에 엄마가 계신 집으로 향하는데, 그날은 초행길에 새벽부터 일어나서 먼 곳까지 가서 오후 늦은 시간까지 교육을 듣고 나니 오렌지가 생각나더라.
집 근처 시장 앞 트럭에서 봉투에 가득 담아 만원에 파는 그 오렌지.

귤은 새콤달콤하지만 오렌지는 대체로 달달한 맛이라 나의 피로를 오렌지 한 개에 살포시 날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택시타고 집에 오는 길에, 젊은데 얼굴이 까매서 몸이 좋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며 과일은 꼭 그 청년트럭에서 사야겠다! 엄마가 말씀 하시던 그 청년의 오렌지를 사려했는데 일찍 들어간 모양인지 차가 없다.

나는 허전한 마음으로 집에 들어갔는데 식탁 위를 보니 그 오렌지들이 예쁘게 둥글게 둥글게 웃고 있다. 얼른 밥 먹자 하시는 엄마를 두 팔로 꼭 안고 “엄마! 어떻게 알았는가? 저거 살려고 보니까 트럭이 없더라고! 어쩜 이리 내 마음을 잘 아는가?” 했더니 엄마는 다 큰 딸의 포옹이 어색해도 흐뭇하신지 “어쩐지 내가 오늘 저것을 사고 싶더라. 많이 먹어라.” 하신다.

자취생활을 하면서 집에 가게 되는 날 미리 전화 드리면 먹고 싶은 것이 뭐냐 물으시고 준비해주시곤 하지만 미리 연락 못 드리고 우리 집이니 그냥 막연히 갈 때도 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내가 먹고 싶었던 것들이 준비되어 있곤 한다.

아무리 엄마가 나를 낳으셨다 해도 어찌 이런 것까지 누가 미리 알려준 것 마냥 알아서 해 놓으셨을까? 누군가와 속이 상한 날 엄마가 전화 오면 늘 하는 “여보세요” 한 마디에 엄마는 마치 내가 오늘 겪은 일을 보신 양 “ 너 오늘 누구랑 다퉜구나!” 하신다.

그러면 나는 엄마 곁인 듯 눈물이 주르륵 떨어지며 “아니야.” 하지만 엄마는 “ 아무 생각 말고 그냥 푹 자라. 그러면 내일되고 모례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하고는 끊으신다.

나는 이미 혼기를 놓쳐 이제는 노처녀이니 골드미스이니 하는 나이를 진즉에 넘어버렸다. 매번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하게 되면 하게 되는 말 “사랑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영원히 사랑해.” 이 말을 진실이라 믿고 또 믿으며 내 스스로에게 그리고 상대방에게 주문처럼 말하곤 했지만, 결국 사랑이 깨어져 버리면 아무도 모르게 눈물 흘리고 사랑이 부질없었음을 깨달을 때 조용히 내 마음을 다독여 주시는 엄마.

결국 사십 먹은 내 인생에 깨달음은 ‘부모자식 간의 사랑만큼 영원한 것은 없다. 그것처럼 변하지도 않고 쉽게 용서하고 다시 원래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그 사랑 뿐 이다.’ 라는 것이다.

이제 아버지가 몇 해 전 돌아가시고 주말에 집에 가도 엄마와 나 둘 뿐이다. 어머니는 둘이서는 주말 내내 먹어도 다 먹지 못할 분량으로 두 마리나 사서 닭볶음탕을 해주시며 “옛날에 너희 오빠가 엄마 치킨 시켜 달라하면 얼른 시켜서 동생오기 전에 얼른 먹어라 하고 네가 치킨 사주라 하면 오빠 오면 시켜주마 했는데, 네가 요새도 닭은 다리가 두갠데 한 개는 아빠가 한 개는 오빠가 먹어서 날개랑 가슴살만 먹고 다리는 안 먹어봐서 못 먹는다니까 내가 그 말이 마음에 걸리고 미안하다. 이제 다리 두개 다 내금딸 먹어라.” 하고 밥 위에 다리를 올려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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