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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유학생 방구하기 전쟁

[완도 칼럼]정병호 /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원장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8.04.28 10:30
  • 수정 2018.04.28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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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호 /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원장

올해 완도고 졸업생 두 명이 필자가 봉직하는 학교에 입학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대학문을 들어온 고향 후배들이 자랑스럽다.

필자도 그랬지만 시골학생한테 가장 어려운 것이 주거 문제다. 대학가 주변은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해, 입학시즌만 되면 방구하기 전쟁이다. 대학 주변 원룸에 비해 비용이 절반 정도 밖에 안 들어가는 기숙사는 턱없이 부족하다. 기숙사 입사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전생에 나라를 구해야 기숙사 방을 얻는다’는 우스개도 생겼다.

등록금이 수년 동안 동결돼 재정 여건이 좋지 않은 대학으로서는 기숙사 신축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나마 신축하려고 해도 학교 주변 임대업자들의 반발로 무산되거나 지연되기 일쑤다.

건축 허가권을 가진 단체장들은 선거 때 표를 생각해선지 학생 편을 드는 경우는 드물다. 학생들이 주소를 실거주지로 옮겨 투표로 실력행사를 하면 모를까 당분간 변화할 기미가 없다. 기숙사 방을 배정하는 기준을 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서 아예 제비뽑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무책임한 측면이 있지만,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다는 반증이다.

방 때문에 입학이 취소될 뻔한 일도 있다. 사연은 이렇다. 농촌 출신 학생이 특별전형으로 합격했다. 그런데 고교 졸업 때까지 6년간 농어촌에 거주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제도를 악용하여 위장전입을 하는 것을 막자는 취지다. 이 학생은 합격통지를 받고 기숙사 입사를 신청했으나 떨어졌다. 학교 주변에 부랴부랴 방을 구했고, 주민등록도 옮겼다. 그러나 고교 졸업 전이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문제를 알아차린 학생은 다시 시골로 주민등록을 옮겼다.

고교 졸업 전까지 불과 10여일 주민등록상 거주기간이 부족했다. 이 경우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여 입학을 취소해야 할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법률자문을 받은 변호사들 가운데 입학취소 의견을 낸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마치 사람이 법을 위해 존재하는 듯하다. 그러나 법을 제대로 배웠다면, 상식에 반하여 입학 취소라는 결론은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법이 도대체 왜 존재하는가 한번 생각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이미 로마 황제도 ‘법은 사람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설파했다. 법은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는 말이다.

자신이 영혼 없는 법기술자가 아니라, 진정한 법률가라고 생각한다면 마땅히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학생이 부주의한 측면도 없지 않지만, 그렇다고 입학을 취소당할 정도의 잘못을 저질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학생이 주민등록을 옮긴 것은 오로지 입학 후 살 방 때문이었다.

그래야 임차보증금을 확실하게 돌려받을 수 있고, 혹시 집주인이 바뀌더라도 본래 계약기간 동안 문제없이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학생의 실수도 온전히 그만의 문제라고 보기 어려운 까닭이다.

입학취소는 학생한테는 정말 가혹한 처사다. 법원으로부터 입학허가 취소처분 집행정지를 얻고 난 뒤, 본격적으로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벌인다 해도 최종적으로 승소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런 상태에서 학과 공부가 잘 될 리 만무하고, 또 재수를 하여도 합격한다는 보장도 없다. 학생의 이런 처지를 생각한다면 당연히 입학을 허용해야 한다고 본다. 입학허가 취소를 당했다면 학생은 참 억울했을 것이다. 법을 적용함에 있어서도 역지사지(易地思之)가 필요하다. 만약 자기 자식이 문제됐다면 입학취소라는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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