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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바람도 꺾임없이 반가운 악수 청하고픈

[완도의 자생 식물] 45. 뽀리뱅이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18.04.28 19:23
  • 수정 2018.04.28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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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꽃 지고 나면 노란 꽃 핀다. 보리 꽃 피고 나면 뽀리뱅이 핀다. 며칠 전 산에 산벚꽃이 하얗게 피었다가 어느새 연한 산으로 변했다. 한 계절 속에서도 끊임없이 변한다. 한창 피어있을 땐 언제 질 것인가 생각도 못 했다.

그러나 한참 지나고 난 꽃이 지는 걸 안다. 이럴 때가 젊을 때다. 봄을 오십 번 넘게 경험한 이는 꽃이 한창 피었을 땐 저 꽃도 금방 지겠구나 하고 염려된다. 그것은 한참이나 더 피어있기를 바라는 데에 있다. 그만큼 세월을 아끼고 싶은 뜻에서 그러는 모양이다. 이제 들판은 노란 물결이다. 뽀리뱅이 옆에 노란 민들레가 피었다. 조금 있으면 씀바귀 꽃이 올라온다. 씀바귀꽃도 노란 꽃이다. 이 노란 꽃들은 키가 그만그만하다.

민들레가 제일 작고 그다음 씀바귀 그리고 뽀리뱅이가 제일 크다. 뽀리뱅이는 두해살이풀이다. 이미 지난해 가을 싹 트고 잎을 내어 방석 식물로 겨울을 난다. 잎을 땅에 바짝 붙이고 자라는 모습이 불상을 얹어 놓은 연화대를 닮았다고 부처자리라고 부른다. 보리가 익을 때 뽀리뱅이가 핀다.

뽀리뱅이가 보리꽃이다. 실제 보리 꽃은 있다. 그러나 꽃이 작고 연해서 보이질 않는다. 그래서 뽀리뱅이를 보리꽃으로 부르다가 이름을 구분하기 위해 뽀리로 변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산벚꽃이 지고 나면 들판에 꽃들은 절정을 이른다. 이 중 뽀리뱅이가 주로 많이 피었다.

남쪽나라에서 서식한 이 야생화는 춘궁기에 나물로 먹었다고 한다. 예전에 보리밥이라는 말은 천한 이름이다. 지금은 건강식품으로 변했으니 살기 좋은 환경이 되었구나 싶은데 실제 들길은 황막하기 그지없다. 들판은 지천으로 들꽃이 피었다. 낮은 걸음으로 들길을 가다 보면 시계꽃이 보이다가 약간 돌아가면 자운영 꽃이 반갑게 기다린다.

길게 늘어선 논두렁에 뽀리뱅이가 봄바람과 함께 즐겁게 춤을 춘다. 이렇게 몸과 마음의 길을 열어주는 데 이걸 채울 사람이 없다.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서 인간 냄새가 나온다. 계절 속에서, 자연 속에서 그리고 노란 꽃이 하염없이 피어있는 들길에서 함께 한다면 더욱더 인간 냄새가 날 것이다. 뽀리뱅이 꽃대는 속이 비어있다 해도 그 어떤 바람에도 꺾이질 않는다. 그것은 부드러움이다. 노란 꽃으로 채워진 들길은 부드러운 마음으로 가는 길이다. 4월의 봄은 노란 꽃이다. 뽀리뱅이는 남도의 꽃이다. 오늘 들길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든 반가운 악수를 청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노란 들꽃 앞에서 그리움에 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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