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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처럼 서 있는 넓은 사랑

[완도의 자생 식물] 47. 오동나무꽃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18.04.30 17:33
  • 수정 2018.04.30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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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나무 한그루에서 느닷없이 터지는 보랏빛 서러움이 줄줄이 오동 꽃이 되었다. 연한 꽃잎 위에 마음만 그려내는 오동나무 꽃. 달빛 그리운 날엔 오동 꽃도 흘러간다. 오동나무는 작년 가을에서부터 긴 여정의 겨울을 지나 늦봄에 불현듯 연한 보랏빛으로 꽃을 피운다.

오동나무 꽃은 멀리 있으면 가깝게 오라고 가깝게 다가가면 조금만 더 가깝게 오라 한다. 자세히 보면 연보랏빛 꽃 바탕에 하얀 물감이 스며드는 것처럼 화가도 그려 낼 수 없는 ‘가까운 색의 조화’를 욕심 같아서는 자세하게 기억하고 싶지만 간신히 마음으로 훔쳐올 수밖에 없다.

꽃받침은 연한 밤색으로 된 오동나무 꽃은 얼른 보면 조화로 보인다. 초롱꽃 모양으로 줄줄이 생명을 달아놓고 있다. 옛 이야기로는 딸이 태어나면 오동나무를 심는다고 하며 딸이 어느 정도 걷기 시작하자 아버지는 어느 정도 자란 오동나무를 잘라 버린다. 아내는 속으로 그럴 바에야 심지를 말지.

그러나 오동나무는 싹이 돋고 잘 자랐다.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아버지는 오동나무를 또 자른다. 너무 진지한 남편의 행위를 묵묵히 지켜만 보았다. 이번에도 오동나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잘 자랐다. 혼기가 찬 딸이 시집을 가게 되었다. 그때 아버지는 딸의 나이와 똑같은 그 오동나무를 밑동에서부터 완전히 베어 버렸다. 시집갈 딸의 장롱을 만들어 줄 오동나무는 단단한 재목이 되었는데 이러한 과정이 속을 비워두지 않게 되어 좋은 재목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오동나무 큰 잎사귀만큼 컸다는 이야기이다. 마을마다 오동나무 몇 그루는 있다.

마을 수호신처럼 5월 하늘을 더욱 푸르게 지켜내고 있다. 5월 어버이날이면 초등학교 강당에서 어머니들이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냐. 이 오동동 타령 속에 우리 어머니 노랫소리도 있었는데 무정한 세월은 젊은 날에 어머니의 노래를 들을 수가 없게 됐다. 빨간 양철지붕 옆에서 오동나무 한 그루는 마치 보라색 치마저고리를 입은 어머니처럼 멀찌감치 서 있다. 투박한 꽃받침에 꽃이 된다는 것이 어색하지만 퇴색되어가는 양철지붕을 여전히 지켜내는 오동나무 꽃이 변화무상한 세월을 아는 듯하다. 시골 빈집들도 한때는 자식들이 속썩이면 어머니가 화내는 소리가 엄청 컸을 것이다. 온 가족이 빽빽하게 차 있었던 곳이 점점 퇴락해가는 빈집을 보면서 세월은 가도 사랑과 추억은 고스란히 남아있을 것으로. 오동 꽃. 넓은 사랑. 오월이 다가오니 더욱 짙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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