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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영혼 생살을 돋게 만드는 것 ‘한 편의 시’

[에세이-詩를 말하다]김인석 / 시인. 완도 약산 넙고리 출신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8.05.13 09:32
  • 수정 2018.05.13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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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이 없는 것이 불행한 게 아니라
나쁜 일이 없는 것이 다행한 거야
어느 날 친구가 내게 말했습니다
되는 일이 없다고 세상이나 원망하던
나는 부끄러웠습니다

더러워진 발은 깨끗이 씻을 수 있지만
더러워지면 안 될 것은 정신인 거야
어느 날 친구가 내게 말했습니다
되는 일이 없다고 세상에 투덜대던
나는 부끄러웠습니다

자기 하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은
실상의 빛을 가려버리는 거야
어느 날 친구가 내게 말했습니다
되는 일이 없다고 세상에 발길질이나 하던
나는 부끄러웠습니다                                       

- 천양희, <친구> 전문

인간은 낯설은 사람과 낯익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이다. 태어나면서부터 가족을 바탕으로 학교, 종교, 친구 등 알게 모르게 관계를 맺으며 끊임없이 타인들과 소통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보편적인 삶이다. 그러나 우리는 가끔 방송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주위의 지인들을 통해 고독사했다는 이야기들을 종종 듣곤 한다. 물론 각각의 생각과 뜻이 있어서 홀로 생활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작금의 고독사는 구조적인 사회적 현실이 만들어내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몇 십 년 전만 해도 고독사는 그렇게 흔하게 발생하지 않았다. 그것은 당시의 사회가 가진 자와 덜 가진 자와의 품앗이 같은 상생하는 미덕이 있었고, 정이 오가는 情적인 사회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생활이 나아지면 인심이 넉넉해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몇 십 년 전과 비교하면 몇 십 배 더 잘 사는 사회가 되었는데도, 세상의 인심은 더 메말라가고 물질로 계급화하는 경향의 사회로 흘러간다. 특히 빈부의 격차는 날로 심화되어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사다리마저 끊어져버린 지금의 현실이 참으로 마음이 아프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이렇게 못쓸 사회로 변모해 갔는지,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情을 서로 나누는 사회로 환원될 수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문득 정현종 시인의 시 <방문객>이라는 시 한 편이 떠오른다. “ 사람이 온다는 건/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그는/그의 과거와/현재와/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부서지기 쉬운/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마음,/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그렇다. 물질에 가치를 두지 않고 사람에 가치를 두는 인식의 전환이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전에 모 교수님께서 이런 말을 했다. 권력을 가진 자가 권력을 잃으면 빈껍데기에 불과하고, 재력가가 재력을 잃으면 비참해지는 것이 사람이라고, 그러나 한 편의 좋은 시는 빈껍데기로 변해버린 사람에게도, 비참해하며 영혼이 죽어가는 사람에게도 생살을 돋게 만드는 것이 한 편의 시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많은 공감을 했다. 그리고 제가 잘 아는 지인께서도 죽기로 결심을 하고 마지막으로 커피 한 잔을 하려고 커피숍에 들어갔는데 나희덕의 시 <빚은 빛이다>를 읽고 죽기를 포기했다는 이야기를 저에게 말해 주었다. 보라, 한 편의 시가 얼마나 위대한가.

우리가 이렇게 삭막해져가는 세상에 詩를 친구로 둔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이 되겠는가. 분명코 정과 사랑이 넘치는, 더 나은 사회로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한다.
 

김인석 / 시인. 약산 넙고리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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