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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공간 채우는 향기는 고향 같은 언덕

[완도의 자생 식물] 48. 찔레꽃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18.05.18 13:59
  • 수정 2018.05.18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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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가 나그네 같은 강물을 만나면 난 그대 곁에서 너울거리는 저녁 햇빛을 보며 느릿하게 떠나겠네. 다시 가다가 나그네 같은 들풀을 만나면 그대로 주저앉자 밤하늘에 별을 보고 떠나겠네. 새벽 아침 찔레꽃 보고 가다가 온 종일 찔레꽃 향기에 눈물마저 스며들면 그 자리에서 흙담 주섬주섬 올리고 소담스런 여인처럼 살겠네.

5월의 꽃바람의 대명사는 찔레꽃이다. 찔레꽃 향기가 온 산하를 움직이게 한다. 찔레꽃 숲 속에서 자그마한 새들이 파릇파릇하게 노래하면 살랑살랑 녹색 바람에 흔들리는 하얀 찔레꽃 향기가 맘까지 스며든다. 어릴 적 학교 갔다 돌아오는 길에 어린 찔레 순을 꺾어 먹던 푸른 꿈들은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그 맛이 약간 떫지만 부드럽게 다가오는 그 시절이 그립다. 하얀 향기 배어 있는 찔레꽃 화전에서 어머니 향기를 다시 맡고 싶은데 아쉽게 온 산야에 찔레꽃 향기만 가득하다. 우리 문학작품에서나 그리고 노래에서 왜 찔레꽃 주제로 슬프게만 표현되었을까? 녹음이 짙어가고 한참 마음이 여유로워야 할 때가 5월인데 너무 가난한 시절이 우리 마음들을 고독하게 만들었나 싶다.

일하러 나간 엄마를 기다리는 동안 찔레꽃 따 먹으면서 기다리는 동심은 어떠했을까? 지금은 그리운 시절이 되었지만 말이다. 찔레꽃은 장미의 원종이다. 세계적으로 장미 종류가 많은데 모두 야생 장미인 찔레를 기본종으로 하여 개량한 것이다. 민간에서 약재로 귀하게 여기는데 꽃, 열매, 뿌리, 새순, 뿌리에 기생하는 버섯까지 약으로 쓰여 왔다.

찔레꽃은 차를 만들어 먹으면 위장에 좋다. 열매는 생리통에 잘 다스린다. 뿌리는 산후풍, 산후 골절통에 효험이 있다. 뿌리에 기생하는 버섯에는 항암 효과가 뛰어나단다.

어린 순에는 성장조절 호르몬이 들어 있어 아이들의 성장 발육에 좋다. 찔레꽃 피지 않으면 뻐꾸기 새 노래하지 않는다. 이 향기에 취해 뻐꾹새는 산등성 넘어 사랑의 노래가 조용히 들려온다. 미지의 공간을 넘나드는 찔레꽃 향기야말로 살아남은 생명에게는 고향 같은 언덕이다. 찔레꽃 향기가 갑작스러운 바람에 밀려오면 기다렸던 사랑이 한꺼번에 밀려온 듯하다.

코끝에 향긋한 그리움을 연록의 숲에 숨겨놓고 오롯이 숨통 하나 열리게 한 찔레꽃 향기는 너와 나만이 아는 비밀스러운 것. 가끔 분홍색을 띤 찔레꽃이 다가오면 새롭게 만난 인연처럼 설렌다. 돌무더기 위에 하얀 찔레꽃은 나그네 같은 꽃이다. 어디론가 떠나려고 그 향기를 먼저 떠나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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