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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기품 돋보이는 큰 항아리의 너그러움

[완도의 자생 식물] 52. 작약꽃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8.06.24 17:19
  • 수정 2018.06.24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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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약은 이른 봄에 붉은 새싹으로 언 땅을 뚫고 나온다. 이제는 장독대 옆에서 화려하게 피어있다. 이른 봄에 피는 나무들도 이제 영롱하게 열매를 달고 있다. 매실, 살구, 앵두, 자두이다. 새싹과 꽃 그리고 꽃과 열매의 간격이 참으로 짧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막상 새싹이 돋고 꽃이 필 땐 저것이 언제 열매가 될까 했는데 뒤돌아보니 꽃과 열매가 되었다. 봄이 오기 전에 봄을 간절히 기다렸다. 꽃이 필 땐 열매를 기다렸다. 한동안 바쁘게 살고 있었던 것일까. 꽃과 열매의 간격이 그렇게 짧다고 느꼈을 때는 이미 지나버렸다. 그러나 그 길목에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에 작은 위안이 된다. 우리 지방에서는 작약을 함박꽃이라고 부른다.

함박은 통나무를 파서 만든 큰 바가지이다. 크다는 얘기다. 함박꽃도 대체로 큰 꽃이다. 여러 송이가 피면 큰 장독대와도 잘 어울린다. 장독대는 비례와 균형의 미가 돋보인다. 아주 작은 항아리 옆에는 채송화가 핀다. 그다음에는 봉선화와 함박꽃이다.

제일 큰 꽃은 접시꽃이다. 옛사람들은 장독대가 냉장고 역할을 했다. 뱀과 개구리 퇴치법으로 봉선화와 접시꽃을 심었다. 특히 봉선화는 냄새가 독특하다. 그래서 뱀이 달려들지 못한다. 작약의 뿌리에 안식향산과 아스피라긴 등이 함유되어 있어 진통, 해열, 진경, 이뇨, 조혈, 지한 등의 효능을 가지고 있으며 복통, 위통, 두통, 설사복통, 월경불순, 월경이 멈추지 않는 증세, 대하증, 식은땀을 흘리는 증세, 신체허약증 등에 좋다고 한다. 옛날 부인들에게 약이 특별하게 없었다. 작약은 부인병에 특효가 있어 장독대 옆에 심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함박꽃은 너그럽다. 아주 큰 항아리의 너그러운 선과도 잘 어울린다. 처음 새싹도 큼직하게 나온다.

어느덧 잎과 줄기가 굳어졌을 때 크게 웃음 짓는다. 세상일도 이런 식으로 풀었음은 한다. 함박꽃은 여러 겹잎으로 핀 것도 있다. 그런데 단 잎으로 핀 함박꽃이 마음이 간다. 단출하게 피어야만 마음의 여력이 거기에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식물을 화려하고 빽빽한 꽃잎으로 개량한다. 이것은 우리 문화와도 같은 맥락이다. 밖으로 보이기 위한 외식 적인 문화이기 때문이다. 명품의 옷이 입지 않아도 얼굴에서만큼은 내면의 기품이 보인다.

이런 사람을 보면 왠지 보는 이의 마음도 닮아간다. 빨간 꽃, 분홍 꽃, 흰 꽃들의 마음은 한결같을 것이다. 단출하게 피어있는 함박꽃이 활짝 웃고 있네. 오늘 생각할 수 있는 분량이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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