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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시인 김남주를 만나다

[5.18 청소년 기획연재 1]5.18 국립민주묘지를 다녀와서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8.06.24 17:22
  • 수정 2018.06.24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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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에서 아침 8시가 조금 넘어서 출발하여 10시 30분에 망월동묘지에 도착하였다. 우리는 김남철 선생님의 해설을 들으며 여러 명의 민주 열사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그 중 김남주 시인(윗 사진의 인물)의 이야기를 들게 되었다.

김남주 시인은 박정희 정권 당시 유신헌법이 선포되자 전국 최초로 반(反)유신 지하신문인 <함성>을 제작하신 분이다. 1979년 '남민전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광주교도소에 수감되었고 1994년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김남철 선생님께서는 김남주 시인의 시를 교과서에서 자주 볼 것이라고 하셨다. 그 외의 김철수 열사의 이야기를 들었고 무명열사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활동 중 사망하신 열사의 신원을 확인하지 못해 이름조차 알지 못한 채 묻어져 묘비에 ‘무명열사의 묘’라고 새겨져 있었다. 그것을 본 나는 기분이 묘했고 가족의 시신조차 찾지 못한 유가족의 아픔에 가슴이 찡했다. 그리고 망월동묘지는 원래 시립묘지였으나 시간이 지나며 수많은 열사들이 이 곳에 묻히면서 자연스럽게 공립묘지가 되었다고 하셨다.

우리는 김남철 선생님의 해설을 모두 듣고 난 후 자유롭게 묘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던 도중 2015년 11월 14일 ‘1차 민중총궐기’ 시위에서 차벽을 뚫기 위해 버스에 묶인 밧줄을 잡아당기던 중 경찰의물대포를 맞아 뇌출혈로 사망하신 백남기 농업인의 묘 또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다 같이 모여 국립 5·18 민주묘지에 가기 위해 모이던 와중 영화 ‘택시기사’의 주인공인 위르겐 힌츠페터의 추모비를 발견했다.

그곳에는 힌츠페터가 남기고 간 머리카락과 손톱 등 유품이 묻어져있었고 바로 옆에는 5·18 민주화운동 그 당시 취재하러 온 힌츠페터와 군인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나의 키와 비슷한 크기로 가판대를 세워두었다.

그것을 보고 난 후 국립 5·18 민주묘지로 이동하였고 우리는 민중항쟁 추모탑 앞에서 묵념을 올린 후 묘지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수많은 열사들의 무덤이 있었고 김남철 선생님의 말씀으로는 앞의 제 1묘지가 5·18민주항쟁 당시 사망하신 열사 분들의 묘지이고 그 뒤로는 그 이후 사망하신 열사 분들의 묘지라고 하셨다. 또한 이곳에 자신의 고등학교 친구들이 묻혀있다고 하셨다.

우리는 다시 자유롭게 묘지를 둘러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고 나와 민주는 묘지를 돌아보던 중 김남철 선생님의 수업시간에 들었던 ‘임을 위한 행진곡’의 주인공들이자 영혼 결혼식을 올린 박기순 열사와 윤상원 열사의 묘를 볼 수 있었다. 교과서에서만 볼 수 있었던 묘지를 직접 눈으로 보니 더욱 실감이 났다. 그러다 좌측으로 이동하던 중 중년 남성분이 소주와 과일을 묘 주변에 내려둔 채 슬피 우시며 절을 하시는 모습을 발견하였다. (계속)
 

김지현 / 완도고 1학년. 청소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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