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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하늘이 가물거릴 때 담벼락에 기댄 수국

[완도의 자생 식물] 54. 수국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18.06.30 11:19
  • 수정 2018.06.30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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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국이 피면 아직 남아 있는 슬픈 세상은 남촌에서 피어날 것이니 네가 붉게 피어나면 나는 슬픈 운명이 되어 어느 빈집에 들어가 희미한 불빛이 되나니 너무 슬퍼 말아라. 눈물 많은 사람도 다 꽃이 되느니라. 땅과 바람과 물이 한 몸을 이루고 있는데 그 뒤 배경은 무엇으로 채워졌을까. 그것은 마음의 공간이 아닐까 싶다. 눈물의 골짜기에서도 꽃은 핀다.

누구나 겪는 삶의 여정이다. 사랑 때문에 꽃을 보고 운명 때문에 무명천에 보랏빛 꽃이 된 사람들은 말없이 꽃 속에 마음을 묻고 있다. 6월의 집 마당에 수국은 찬란하게 아쉬운 계절의 눈물을 훔치고 흩어져간 정들을 빗물로 모아둔 수국 한 송이가 수줍어하고 있다. 꽃은 세월의 무게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 그만큼 싱싱하고 힘찬 기운이 넘쳐흐른다. 그 많은 나날을 수국에 옮겨 놓아도 현재 나와 직면하는 기쁨의 시간뿐이다.

수국은 예전부터 우리와 가깝게 있어 친숙한 꽃으로 원래 수구화(繡毬花) 곧 동그랗게 수놓아
진 꽃으로 불렸던 것이 차츰 수국으로 되었다고 한다. 국화과에 속하지 않지만 물을 좋아하고 국화처럼 탐스러운 꽃을 피우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 붙어진 수국은 낙엽관목이다.

겨울에 가지가 얼어 죽는다. 이듬해 다시 나기를 반복하면서 목본의 줄기를 가진 어엿한 나무가 된다. 수국 꽃의 색깔은 보랏빛에서부터 파란 하늘색, 흰색, 붉은색까지 매우 다양하다. 꽃의 종류는 한가지이지만 꽃 색이 다양한 이유는 땅의 성질 때문이다. 토양이 알칼리성을 띨 때는 붉은색, 중성일 때에는 하얀색, 산성일 때에는 파란색과 보라색을 나타낸다.

산수국은 산에서 피는 자생하는 꽃이며 수국의 원종이다. 수국은 온통 꽃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산수국은 가운데 작은 씨방 같은 것으로 모여 있고 그 주위로 넓은 꽃들로 둘려 싸고 있다. 그런데 가운데 씨방같이 작은 것이 씨앗을 맺을 수 있는 진짜 꽃이고 그 주변을 둘러싼 화려한 꽃잎은 꽃가루를 날라 줄 곤충을 유인할 가짜 꽃이다.

산수국을 개량하여 만든 수국은 화려하기만 하고 생산능력이 없는 가짜 꽃으로 열매를 맺지 못한다.

산수국 속에 무심히 흐렸던 오랜 세월도 다시 돌아보니 새롭게 흘러가고 있다. 아무도 없는 듯이 고요히 꽃을 피우고 나의 갈 길만 가다가 아늑한 시간이 오면 초록의 길동무와 함께 정다운 이야기를 할 것이다. 저녁 하늘이 가물거릴 때 어느 담벼락에 기대어 핀 수국은 가장 순수한 마음의 소리를 들키고 싶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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