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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예쁘게 단장한 시집간 딸 마음

[완도의 자생 식물] 56. 분꽃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18.07.01 01:21
  • 수정 2018.07.01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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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분꽃 같은 어머니가 빨간 분꽃 옆에서 눈물짓다가 이제 마당 한가운데 초록의 얼굴이 되었다. 오래된 빈집 대문 앞에서도 그 많은 세월을 잊은 채 노란 분꽃이 하염없이 피었다. 어머니는 분꽃 치마를 입고 마을 어귀에서 기다리고 있다.

사립문 앞에서, 장독대 옆에서 그저 어머니 마음 가는 데로 분꽃이 되어 있다. 고향을 찾은 그리운 마음은 어머님이 잠시 앉았다 간 그 자리에 분꽃이 활짝 피었다. 마루에 앉아 빨간 분꽃을 보며 어머니가 차려준 노란 된장에 초록의 마음이 두둑한 고추를 먹으면서 그때 7월의 하늘을 보고 싶어진다.

고향 하늘은 분꽃 향기 가득하고 초록 들판으로 걸어가는 사이로 코스모스가 피는 고향 같은 그리움은 남아 있다. 우리에게는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려고 하는데 고향 어머니는 좀 더 부족하게 사는 것이 남는 것이라고. 어머니 마당에 분꽃 씨앗이 아직 떨어지지 않고 아주 간소하게 맺어 단 하나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보여주고 있다.

분꽃은 오후 4시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핀다. 보통 흰 꽃과 붉은 꽃이 합쳐지면 분홍 꽃이 태어나는데 이 꽃은 색깔이 제각기 피었다. 더구나 한 나무에서 여러 색깔을 내어 조용한 화단에 색깔은 즐거운 색으로 보여준다. 대부분 사람은 이 꽃은 일 년 초로 생각하는 데 다년생이다. 분꽃이라고 이름을 짓는 이유는 분꽃이 지고 얼마 있으면 동그랗고 단단한 까만 씨만 꽃받침 위에 달랑 올려놓는다.

이것이 완전히 익으면 조금만 건드려도 땅에 떨어진다. 분꽃 씨를 깨뜨려보면 하얗고 보드라운 가루가 나오는데 이것이 여인들이 바르는 분과 같다고 해서 분꽃이라고 한다. 7월에는 분꽃들이 하염없이 피고 지면서 낯익은 풀 여치 소리도 가득하다. 멀리 있는 자식을 기다리는 어머니 마음처럼 분꽃도 간절한 기다림으로 피어있다.

고향 집 빈집에서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리는 풀벌레 소리는 애처롭기 그지없다. 그리운 어머니는 얼마나 많은 세월로 무슨 그리움을 심어놓았는지 남쪽으로 향해있는 처마 끝에 풍경소리만 고요한 빈 뜰을 가득 채운다. 저녁이면 분꽃 향기로 가득한 마당 한가운데에서 희미한 달빛으로 채우기 시작한다. 오래된 대문 앞에 빨간 분꽃은 언제나 처음인 듯 가장 예쁘게 단장하고 시집간 딸 마음이 여기에 오지 못해 서럽게 울고 있는 듯하다.

저녁연기 냄새 그윽한 곳에서 풀피리를 분꽃 수술로 불었던 옛 시절을 그리워하면서 어머니 마당에 누워 푸른 별을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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