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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은근히 지켜낸, 친근한 꽃

[완도의 자생 식물] 60. 녹두꽃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18.09.08 20:15
  • 수정 2018.09.08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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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형체를 자세하게 그려 넣을 수 없는 꽃이 녹두꽃이다. 아무리 보아도 돌아서면 녹두꽃 얼굴을 기억할 수 없다. 다만 검게 늘어선 녹두만 생각난다. 팥꽃은 녹두꽃보다 조금 크며 길게 늘어선 초록의 콩깍지가 금세 가을 알리며 빨간 팥이 들어 있음이 신기할 따름이다.

녹두꽃과 비슷하게 피는 꽃은 팥꽃과 새팥이 있다. 새팥은 스스로 자라는 야생 콩인데 줄기로 뻗어 나아갈 것처럼 올망졸망 늘어서 있다.

녹두 꽃과 팥꽃은 노랗다. 그러나 열매의 색깔은 확연하게 다르니 신기할 따름이다. 녹두를 거둔 어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시원했을까. 콩깍지가 톡톡 터지는 걸 보고 응어리 진 가슴을 조금이나마 털어냈으리라. 검은 콩깍지가 하얗게 드러내는 순간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녹두 콩만 한 세상. 참고 견디어 내는 인고의 눈물이 만들어 낸 영광이다.

때 묻은 녹두 색 치마는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얼굴과 같다. 자식을 낳기 전에 지고지순한 사랑이었기에 그 자식들은 세상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다. 녹두꽃은 팥 콩과 비해 키가 작고 초록의 잎과 길게 늘어선 녹두 색을 띤 녹두콩깍지는 익으면 검은 색을 띤다. 여름날 초록의 빗방울이 이제 연둣빛 콩깍지로 변해가는 것을 보며 어머니의 녹두 색 옷고름을 보는 듯하다.

마당 한가운데 널어 둔 녹두 콩은 아침나절 햇빛이 잘게 부서진다. 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연둣빛 그리움은 변하지 않고 있다. 언제나 녹두 콩처럼 자잘하게 시간이 흘렀으면 좋겠고 그 곁에 있는 어머니의 부드러운 음성7녹두콩에 알알이 새겨 넣고 싶어진다. 녹두는 한국이 대표되는 나물로 고려말기에 원나라에서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이름으로 숙주나물이라고 한다.

노랗게 녹두꽃이 필 때 핏발처럼 처절하게 피었다 지는 물봉숭화는 그 열정에 못 이겨 피바다를 만들어 놓고 있다. 이렇게 가을이 오기 전에 야생화 꽃들은 자기의 속사정을 온전하게 들어내고 있다.

녹두꽃 피는 길 아래서 붉게 물든 물봉숭화는 제 몸이 일그러진 지도 모르고 피어 댄다. 삶을 은근히 지켜내는 힘을 친근한 녹두 빛 얼굴에서 찾고 싶어진다. 녹두꽃을 한두 번 보고선 세세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먼저 마음이 다가와서 그 얼굴쯤이야 볼 필요는 없는 것일까.

너무 친근해서, 너무 사랑이 커서 가깝게 다가서지 못한 것일까. 당장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해도 결국 그 얼굴은 또다시 필 터인데. 어머니 손안에 터지는 녹두 콩은 세상에서도 터져 품어 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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