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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그림은 전국 모든 분들이 완도를 찾아 줬으면 하는 바람을 담고..."

[이 사람] 고향 완도에 눈먼 화흥리 농부화가 '최선주'

  • 박주성 기자 pressmania@naver.com
  • 입력 2018.09.08 20:59
  • 수정 2018.09.08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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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그림을 언제 시작했느냐고 묻는 사람이 많다. 누구에게서 배웠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저의 생김새가 투박하고 몸집이 큰편이라 예술과는 거리가 멀게 보이는 선입견 때문에 자주 듣는 말들이다.”

어느 제약회사 사보에 실리게 된 그에 대한 질문에 반응하는 그를 보면서 사람들이 보고 느끼는 부분들이 모두 비슷한가 보다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의 대답이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것은 제가 태어난 고향 완도의 자연환경과 밀접한 영향이 있다. 푸른 산과 파란 바다는 언제나 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화흥리 농부화가 최선주.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을 들여다 보게 해주는 인터뷰였다. 맞다. 그에게 모든 것들은 ‘고향 완도’로 집중돼 있었다. 그도 명색이 화가다. 그림은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림은 나에게 ‘활화산’이다. 끊임없이 나의 내면 에너지를 분출해야만 숨을 쉴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림은 나에게 ‘생명’이며 ‘살아 있음’이다”

그는 중·고등학교 때는 미술반에서 활동했고 할아버지의 반대로 미술대학을 포기하고 건축공학과에 입학했지만 그림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했다. 미술대학 청강을 했고 미술대학 교수님들과 많은 관계를 가지고 대학생활을 했다. 1980년 미술 써클 ‘바로크80’을 창립하여 그해 회원전을 개최할 정도로 그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도전했다.

그는 세계적인 화가가 되리라는 가슴 속에 새기면서 작업에 몰입하고 있다.
“저는 누구에게 그림을 배워 보지 않았다.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모방과 변형을 거듭하면서 새로운 표현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해 가고 있다.”

그의 작품세계는 어떤 것일까.
“제가 추구하는 작품세계는 자연을 눈으로 보고 마음 속에서 새로운 자연의 세계를 재해석하여 주변에 있는 모든 소재를 이용, 다듬어지지 않는 투박함으로 원시적이고 원초적인 색으로 범벅하는 것이다. ‘즉’ 자연+환상+원초적 자연이라고 하면 너무 화려한 표현인가?”

그는 고향 완도에 귀향하여 동백을 소재로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동백꽃은 완도를 상징하는 꽃이다. 모든 꽃들은 봄에 화려함을 뽐내지만 동백은 추운 겨울 홀로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선물하는 고마운 존재다."
"완도에서는 동백꽃은 세 번 핀다고 한다. 겨울에 피어서 동백이요, 봄에 한번 더 피어서 춘백이요, 우리들 마음 속에서 다시 피어서 심백이다. 동백꽃은 가장 아름다울 때 미련을 두지 않고 아무 것도 남김없이 통째로 떨어져 아름다움을 내려 놓을 줄 아는 정말 멋진 녀석이다. 정말 아름다운 꽃 아닌가? 우리 인간들도 여물어 갈수록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정도면 동백에 그가 얼마나 심취해 있는지 가히 짐작이 갈 것이다. 

그는 미치게 그림이 그리고 싶었으나 대학에서 특이하게 건축공학을 전공했다. 재생디자이너로서의 삶을 사는 그에게 건축공학과 예술의 상관관계를 물었다.
“제가 건축공학을 전공한 것이 미술에 대한 나의 욕구를 다양하게 만드는 영양분이 되어서 설치미술과 조형물 제작에 많은 관심과 생각을 자극해 주고 있다. 원시시대에는 패총(조개무지)이라는 것 속에서 우리는 그 시대의 생활양식을 유추한다. 재생이라는 것은 사회의 발전과 변화에서 생겨나는 일종의 쓰레기다. 이것을 새롭게 관계를 엮어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 넣어 인간에게 추억과 역사와 상상력을 불러 일으켜 세우는 것이야 말로 예술가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고, 이 분야에 대해서 많은 공부하면 할수록 나름 무척이나 흥분시키고 있다.”

완도문화지킴이라고 스스럼없이 자부하는 그. 그걸 위해 그가 벌이는 활동은 무엇일까.
“저는 예술에 대한 관심이 열악한 내고향 완도에서 완도가 가지고 있는 역사와 문화를 새로운 예술로 변화시키고자 다양한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바로 완도에 ‘작은 미술관’을 설치하는 작업이다. 저는 ‘작은 미술관’ 12개를 만들어 매달 1회씩 새로운 작품을 주민들에게 선보일 계획이다. 현재는 제4호관까지 개관한 상태다. 완도경찰서 민원실, 완도문화원 로비, 작은영화관 빙그레시네마 로비, 완도읍사무소 민원실에 만들어져 저를 포함한 여러 지역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 중에 있다.”

그의 작품 작품발표회 타이틀은 언제나 I LOVE WANDO! YOU LOVE WANDO! WE GO TO WANDO!다. 그에 말에 따르면 “내 고향의 아름다운 풍경과 깨끗한 공기, 맑고 청정한 바다가 있기 때문에 나 혼자 만끽하기가 죄송하여 전국에 있는 모든 분들이 내고향을 찾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고 있다”고 한다.

그를 만나면 즐겁다. 사고가 고정돼 있지 않아서다. 그래서 인지 그의 도전정신은 오히려 젊은이 못지 않다. 그런 그의 앞으로 계획은 무엇일까.
“내고향 완도를 세계인이 찾아오는 예술의 섬을 만들어 가는데 작은 힘을 더하고 또한 나의 작품에 몰입하여 새로운 방법의 회화를 창조해 보고 싶다. 그리고 금년에는 일본에서의 개인전을 준비 중에 있으며 내고향 완도에서 100호전을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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