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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오는 날까지 온몸으로 전율

[완도의 자생식물] 69. 산감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18.10.26 09:27
  • 수정 2018.10.2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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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다. 나의 풍경을 노래하기 위해 오늘도 오른다. 순간 오르는 길에서 미덥지 않더라도 계속 오른다. 평탄에 대로로 차갑게 가는 것보다 뜨겁게 운명처럼 오르는 일이 오늘 풍경이 내 안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푸르던 지난날 생각이 너무 찬 직사광선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젠 내 앞에 선 풍경은 거울이 되어 마음을 다시 가다듬게 된다. 아무리 단단한 사물도 마음을 주면 통한다. 산에 산돌 역시 올망졸망 정이 간다. 산돌 위에 빨간 담쟁이 잎도 정이 많나 보다. 산을 오르다 보면 산감나무가 보인다. 산길을 오르면 산감을 보고 산을 보고 하늘을 본다. 이들은 내가 낮은 데서 봐야 보인다. 상대를 이해하는 것도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자기가 낮은 자세에서 보지 않고선 결코 보이지 않는다. 산에서 자생하는 산감은 그리 크지 않다. 작은 나무들과 더불어 산다. 여름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늦가을에 그의 정체는 확연하게 드러낸다.

산사의 은은한 종소리 속에 상냥하게 드러낸 얼굴을 보니 봄산에 오는 듯하다. 산감나무의 생명력은 끊기지 않은 산길처럼 강하다. 산에서 자생하는 식물들이 다 그러하듯이 잔뿌리가 많다. 물기가 적은 땅과 가뭄에도 살아남기 위해서다. 산감나무 역시 잔뿌리가 많다. 홀로 살아가려면 간소하면서 근본은 강해야 한다. 그 근본은 뿌리인 것이다. 잔뿌리 하나는 약하지만 여러 개가 겹치면 어떤 바람에도 흔들림이 없다. 단감과 대봉을 옮겨심기 위해선 잔뿌리가 많아야 한다. 그래서 산감나무에다 대봉 순으로 접을 붙여야 옮겨 심어도 잘 산다. 자생력이 강한 뿌리와 먹기 좋은 감으로 교합한 것이다. 집에서 자란 땡감도 떫다.

산에서 자란 산감은 먹기에는 너무 떫다. 지독한 삶에서 나온 열매라 그럴까. 산감나무는 벌레가 없다. 감히 벌레가 건드릴 수 없는 무언의 법칙이 있을 것이다.

산감나무의 내면이 강하다. 그러나 외연은 부드럽다. 재 넘어 산감은 그대로 가을의 서정인 셈이다. 낙엽이 날리는 사이에 산감은 여전히 가을 속으로 빠져 들게 한다. 가을이 깊어질수록 산감의 색은 짙어진다. 파란 가을 하늘만 보아도 눈물 날 지경인데 늦가을 산감은 온몸에서 전율을 울리게 한다. 이젠 가을의 소리는 뒤로하고 나뭇잎 흔적에서만 바람에 흔들린다. 얼마 있으면 산감만 홀로 가을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첫눈 오는 날까지 주홍빛으로 밝히고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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