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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손들 핸드폰번호를 비석에 새겨야 하나[완도 시론] 정병호 /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완도신문 | 승인 2018.11.09 10:24

고향을 떠나 타지에 사는 자식들로서는 조상 묘를 관리하는 것이 큰 문제다. 명절 전에 자식들이 모여 벌초를 하는 것이 도리이나, 실상은 ‘몸 따로, 마음 따로’다. 오랜만에 벌초나 성묘 갔다가 조상묘가 사라진 것을 보고 망연자실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번 추석에도 어김없이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성묘를 가보니 43년간 자리를 지켰던 아버지 묘가 돌연 개장(開葬)되어 있었던 것이다. 가루가 되어 나타난 아버지 유골 앞에서 자식들은 오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연은 이렇다. 43년 전 아버지는 오랫동안 암투병하다 어린 자식들을 두고 돌아가셨다. 자식들은 아버지가 묘자리로 쓰려고 사둔 땅에 아버지를 묘셨다. 아버지 타계 후 자식들은 생활고를 겪었고, 땅은 경매로 넘어가 다른 사람 소유가 됐다. 자식들은 매년 명절 때마다 성묘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어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해 경황이 없어 1년 반 동안 성묘를 못했다. 그 사이 묘지 근처에 아파트가 신축되어 진입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아버지 산소가 연고 없는 묘라는 이유로 파헤쳐지고 말았다. 어처구니 없는 사건은 아파트를 신축한 지역주택조합, 건설업체 및 장묘대행업체의 탐욕과 관할 관청의 합작품으로 보인다.

타인의 토지 위에 있는 분묘라도 토지소유자가 분묘의 이장을 요구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관습법상 분묘기지권(墳墓基地權: 묘터에 대한 권리)이란 게 인정되기 때문이다. 남의 땅에 건축할 권리인 법정지상권과 유사하다. 토지소유자의 승낙을 얻어 분묘를 설치한 경우는 물론이고, 토지소유자의 승낙 없이도 분묘를 설치한 뒤 20년 이상 평온(平穩)·공연(公然)하게 그 분묘의 기지(基地)를 점유하거나, 자기 소유의 토지에 분묘를 설치한 후 토지를 타인에게 양도하거나(경매된) 경우에도 분묘의 소유자는 분묘기지권을 취득한다. 이 사건은 두 번째 사례에 속한다. 경매로 땅을 취득한 사람이라도 장사(葬事)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사법) 시행일인 2001년 1월 13일 전에 설치한 산소에 대해서는 이장을 요구할 수 없다. 자식들에게 분묘기지권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토지 소유자는 자신의 승낙 없이 자기 토지에 분묘를 설치했다는 이유로 관청의 허가를 얻어 장묘대행업체를 동원해 산소를 밀어버렸다. 담당 공무원들은 장사법의 무연(無緣: 연고 없는)분묘 처리 규정을 따랐다고 해명한다. 하지만 보도된 바에 따르면 법률관계를 제대로 살피지 못한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고 생각된다.

장사법에 따르면 무연분묘로 개장할 수 있는 것은 토지소유자(또는 묘지설치자·연고자)의 승낙없이 설치된 분묘로서 연고자가 없거나, 관할 관청이 일제 조사를 통해 연고자 없는 분묘로 확인한 경우에 한정되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분묘개장은 첫 번째와 관련된다. 토지소유자의 허가신청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분묘의 연고자는 해당 토지 소유자, 묘지 설치자 또는 연고자에게 토지 사용권이나 그 밖에 분묘의 보존을 위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는 관련 조항은 그 시행일인 2001년 1월 13일 전에 설치한 분묘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다(2000.1.12., 전부개정 법률 제6158호 부칙 제2조). 따라서 담당공무원으로서는 분묘개장 허가신청을 한 토지소유자에 대항할 수 있는 분묘기지권이 있는지를 세심하게 살펴야 했다.

연고자가 이장하지 않으면 개장한다는 취지의 공고를 3개월 이상 했다는 것은 변명이 되지 못한다. 애초에 이장을 요구할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담당공무원이 주의를 게을리 했으니 국가배상청구를 당할 우려가 있다고 본다. 개발 이해관계자의 탐욕과 관청의 무책임이 사라지지 않으면, 비석에 자식들 이름뿐만 아니라 핸드폰번호를 넣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자식들과 연락이 안된다는 이유로 산소를 밀어버리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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