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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흙같은 어두운 밤 대동강 살얼음판 건너 그 여자, 다시 산다!

[완도人] '옥이 구두' 수제화 가게 운영하는 탈북 새터민 허춘옥 씨

  • 손순옥 기자 ssok42@hanmail.net
  • 입력 2018.11.09 10:57
  • 수정 2018.11.26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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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에 새터민은 단 두 사람 살고 있다. 그 중 한 사람이 허춘옥씨. 현재 ** 면소재지에서 ‘옥이구두’ 수제화 가게를 하고 있는 그를 만나러 갔다. 가게는 우체국 바로 앞에 있어 눈에 쉽게 띄었고, 그저 소박하고 시골스럽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입구에 들어섰는데 짐짓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가게 규모가 꽤나 크고 깨끗이 잘 정돈 되어 있었다. 한쪽 벽에는 직접 만든 다양한 신발들이 진열돼 있었고, 실내엔 음악이 다소 크게 틀어져 있어 신발가게라는 느낌 보다 이미 오래전부터 드나들었던 친숙한 단골집 같은 편안함이 느껴졌다.

그는 어느 추운겨울 칠흙 같은 밤에 대동강 살얼음판을 건넜다.  평안북도 구성에서 태어나 수제화 만드는 아버지 밑에서 기술을 보고 배우며 자랐다. 결혼하여 1남 2녀를 낳고 수제화 일을 하며 가족과 함께 그다지 큰 부족함 없이 살았다.  그러던 어느 때, 중국에서 살고 있는 큰언니의 권유로 중국에서 잠시 머물게 되었었다.

중국과 가까운 함경도와 달리 평안도는 외부와의 접촉이 거의 없는 지역이다. 때문에 그동안 중국이나 남한의 발전상을 거의 모르고 산 그에게 어느 날 언니가 권유 했다. “남한에 가서 살아보자”고.

이후 언니와 함께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북에 있는 가족을 위한, 좀 더 사람답게 살아보기 위한 결심이었다. 그렇게 하여 그는 언니와 함께 3국을 거쳐 남한에 오게 되었다. 과거 우리도 어려웠던 시절에 가족 누구 한사람이 마치 희생양처럼 외국으로 가기도 했었다.

# 삶은 긴긴 ‘선택의 여정’ 같아
“4년 전 언니와 함께 천안에서 처음 정착하게 되었어요. 열심히 적응해 가며 살아가던 어느 날, 같은 처지의 사람에게서 씻을 수 없는 상처의 말을 들었습니다. 저를 모함하는 말이었어요. 그길로 무작정 차를 타고 되도록 천안(그녀는 시내라고 표현했다)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내려오다 보니 강진 마량까지 오게 되었어요. 2년 전 일이네요…, 그때부터 일단 숙식을 해결해 주는 곳을 찾아 주방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찾아갈 가족도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막막한 곳으로 정처 없이 떠나왔을 때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잠시 먹먹해졌다.
…….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열심히 돈을 모아 북에 있는 가족에게 보냈습니다. 그러다 하는 일을 바꿔 볼까 하고 미용기술을 배우기 위해 목포로 갔습니다. 하지만 학원을 다녀도 용어가 북한과 너무 달라서 공부하는데 힘이 들어 포기했습니다. 그런 중에 함께 공부한 언니에게‘저는 미용보다 더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는데…’라고 했더니, 언니가 도와준다고 당장 그걸 하라고 해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길로 다시 고금으로 내려와 준비 끝에 지난 4월 ‘옥이구두’ 수제화 가게를 열었다.
북에서 15년동안 쌓은 경험을 살려 신발의 전 공정을 오롯이 혼자서 해낸다.

“북한에서는 여자들이 신발 만드는 게 보통입니다. 그런데 남한에서는 여자가 신발을 만든다고 하니 믿질 않더군요. 북한에서 수제화는 기성화보다 값이 3배 더 비싸지만 오래 신게 되므로 인기가 더 좋답니다. 왜냐하면 북은 접착제 성능이 떨어져 기성화는 금새 못 신게 돼요.”

재단과 바느질 한땀 한땀이 그의 세심한 손끝에서 구두, 운동화, 부츠, 골프화 등 모든 종류의신발이 만들어 진다. 그래서 편안할 수밖에 없다. 또, 오래된 가죽가방, 신발 등을 수선해 새것처럼 만들어 준다.

“여기에 와서 느낀 건데, 환경의 차이인지 몰라도 이곳에 사신 분들이 대체로 발 폭이 넓더군요. 아마 평소에 편한 신발만 신다보니 모양에 변화가 좀 있는 것 같아요. 때문에 여기 오신 손님들은 집에 기성화가 수 켤레 있어도 발이 불편해 잘 신지 않게 된다고 하더군요.”

#  선택한 삶에 몰두할 뿐이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다보니 주위에서 인정해 주는 것 같아요. 주변의 고마운 분들의 도움으로 이렇게 가게도 차리게 되었어요. 이제부터 제가 돌려 드려야죠. 저희 가게를 찾아온 손님에게 성의껏 편안한 신발을 만들어 드리는 것이 제가 할 일이겠죠.”

버나드 쇼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행복한지 불행하지 않은지 고민할 시간을 갖는 것”이야말로 불행의 비결이고 “행복하고 행복하지 않고는 기질에 따른 것”이라고.

그는 오늘도 스스로 선택한 ‘삶의 길’ 위에서 최선을 다한다.
그가 살아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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