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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명선(茗禪)이라 했을까?

[무릉다원, 은선동의 茶 文化 산책 -40] 김덕찬 / 원불교 청해진다원 김덕찬 교무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8.11.16 10:21
  • 수정 2018.12.10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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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청해진다원 김덕찬 교무

추사 김정희가 남긴 많은 글씨 중에 ‘명선茗禪’이 있다.
이 명선은 초의선사가 추사에게 정성스레 만든 차를 보낸 것에 대한 답례로 써서 보낸 글이다. 즉 ‘차를 마시며 선정에 들다’ 혹은, 명茗이 차를 뜻하기도 하지만 싹을 뜻하는 글이어서 ‘차는 선의 싹’이라고도 한다.

작품 좌우에 내려 쓴 글의 내용은 "초의가 직접 만든 차를 보내왔는데, 중국의 전설적인 명차 몽정과 노아에 비견해도 부족함이 없다.

백석신군비의 뜻을 빌려, 병중의 거사가 예서로 쓰다."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추사는 '다선'이라는 일반적인 표현 대신, 왜 '명선'이라 했을까? 또는, 왜 '초의草衣라 쓰지 않고 '초의艸衣'라 쓴 것일까? 여기서 발견되는 공통점이 있다.

'명茗'은 '차茶'의 새로 갓 돋아 올라온 싹을 말하고, '초艸' 역시 '초草'의 새로운 싹을 말함이니, 모두 ‘새로운 싹이 돋아 올라온’ 다시 말해 ‘새로움의 시작’이란 의미로 '차茶'와 '초草'가 아니라 '명茗'과 '초艸'로 표기했던 것은 아닐까? 비약적일까? 

추사는 단순히 ‘차를 마시고 선정에 들다’라는 의미를 담아내기 위해 '명선'이라 쓴 것이 아니라, ‘차나무에 새로이 돋아나온 싹’의 의미와 선을 합성하여 '명선'이라 하였던 것은 아닐까?

즉 초의 선사가 ‘새로운 방식의 활선活禪 운동을 펼치는 승려’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하였던 것은 아닐까! 올바른 승려의 길을 걷기 위한 방편으로 차 덖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전하는 일을, 부처님(진리)이 초의에게 내리신 자비(필자에게 있어 천명이라 여겼던 것)에 보답하기 위함으로, 돌부처(진리)의 뜻을 밝히는 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이처럼 ‘명선’의 의미가 단순히 차 선물에 대한 보답이라기보다는 '새로운 방식의 선운동'을 펼치는 초의를 격려하는 글이라고 이성현의 <차 이야기>에서도 말하고 있다.

마치 필자가 일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선심을 여의지 않고 사는 것을 표준하고, 차 한 잔 마시는 것이 일과가 되어 차와 선이 둘이 아니라 차명상, 즉 ‘명선’을 활구삼아 사는 삶과도 일맥상통하여 옛선지식들의 마음들이 깊은 감동으로 울려온다.

차와 선은 같은 것이니 차를 마시는 것 자체가 스스로의 자연스러운 수양이며 깊은 지혜를 닦고 넉넉하고 여유로운 덕을 쌓는 것이며, 차의 진정한 묘용은 바로 차의 일상성에 있다고 평소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초의는 39세의 젊은 날에 자기만의 작고 소담스런 토굴 일지암을 갖게 된다. 오늘날 은선동에 작은 토굴같은 차실을 의지하며 사는 필자처럼. 초의 역시 스스로의 서원으로 본연의 ‘선과 차’에 대한 깊은 정진을 하였을 것이다.

선은 물론 차관련 모든 서적을 섭렵하여 우리나라 차의 경전적 위를 갖는 <다신전>과 <동다송>을 세상에 내 놓았다.

이와같이 명선의 의미속에 갊아있는 초의와 추사의 세기적인 방외교류는 선각자의 숭고함을 넘어 벗을 향한 그리움의 또다른 절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명선茗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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