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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오토바이에서 뛰어 내리겠어요!

[나의 반쪽] 양응렬 독자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8.12.03 11:11
  • 수정 2018.12.19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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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이런 글을 쓰리라곤 상상조차 했을까! 어느 날, 사석에서 우연하게 만난 완도신문 편집국장. 청산이 고향이라니, 대뜸 "11월 특집호가 청산면이라 청산 출신의 결혼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옆에 있던 동료들까지 거든다.

사면초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참, 거부할 수 없는 원고 청탁. 그 순간 머리 속에는 '내가 어떻게 아내를 만나게 됐지, 지난 세월 우리의 삶은 잘 살아왔나!' 이러저러한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머나먼 한 점의 섬, 청산도.
제주도에서 닭소리가 들려온다는 절해고도의 외딴 섬.
예로부터 청산도에는 "똥장군을 짊어져도 시 한 수 읊을 수 있다. 그러니 청산가서 글 자랑하지 마라"고. 청산인들을 보면, 부모 세대들의 교육열 때문인지 하나같이 선비 정신이 살아있다.
의리 있고, 예의범절을 알고 정이 깊은 고장.

문명의 혜택은 없을지라도 자연을 벗삼아 살아왔다. 어린 시절에는 밤하늘에 떠 있는 수 많은 별들을 바라보며 할머니의 구수한 옛날 얘기를 들으며 동심을 키워 왔으며, 가끔은 어르신들로부터 도깨비 얘기(술에 취해 밤길을 걷다가 도깨비를 만나 씨름을 했는데 새벽에 눈을 떠 보니 쓰레기장 빗자루를 껴안고 있었다는 얘기 등등)를 들으며 자라왔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어느 덧 내 나이 27세! 아마도 그 때가 설 명절로 기억되는데, 조용히 어머님이 나를 부르셨다.
산 너머 마을 착한 아가씨가 있다 해서 중매를 해 두었으니 가서 한 번 만나고 오라는 것이었다. 몇 번을 거절했으나 어머님의 뜻이 워낙 완강해서 장가는 가지 않더라도 어머님의 뜻을 따르기로 하고 늦은 오후, 혼자서 그곳을 찾아갔다. 방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아버님만 계시기에 인사를 드리고 자리에 앉았다.

자리가 자리인지라 어색하고 거북하여 쑥스러워 침묵이 흘렀는데, 갑자기 정적을 깨고 들려오는 마을 방송 소리.
"○○○씨, ○○○씨,"
"지금 집에 손님이 와서 찾고 있으니 속히 댁으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똑 같은 내용이 2~3회 확성기를 통해 온 마을에 울러퍼진다.
방송을 듣고나서부턴 참, 오묘한 시간이다. 기다리는 그 순간은 설레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하는 묘한 기분이 교차했다.

잠시 후, 방문이 열리더니 한 여인이 들어 오는데, 가장 아름다운 별빛 하나가 내 마음에 들어와 콕 박히는 듯 했다.
약간 긴 머리에 하얀 얼굴, 훤칠한 키에 늘씬한 몸매까지.
이름은 촌스러웠지만 첫 인상만큼은 스물일곱 총각의 마음을 단박에 빼앗아가기에 충분했다.
첫 눈에 반한다는 말. 이런 말인가 부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내 마음이었고, 이제부턴 뭔가 작전이 필요했다. 아버님에게 함께 저녁 식사를 하겠다고 했더니 흔쾌히 승낙해 주셨다.

처음 만난 자리라 서먹서먹했지만 이 여인을 내 사람으로 만들어야겠다는 굳은 신념이 일었다. 몇 마디 주고받지도 않았지만 난 대뜸 “우리 결혼합시다”
나름 무지 솔직한 말이었지만 그녀는 무척 당황하는 눈치였다.
"저는 지금 결혼할 생각이 없어요! 결혼 준비도 전혀 되어 있지 않았고요!"  "오늘 일은 없었던 일로 하세요! 전 내일 아침 여객선으로 상경하겠어요!"

'청천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이렇게 헤어지면 이대로 끝이잖아!'
일단 그녀에게 "알았소. 집까지 모셔드리겠다"고 말한 뒤 오토바이에 태웠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대로 보내주면 끝나버릴 것 같아 나름 꾀를 부렸다.
오토바이 방향을 돌려 우리집으로 그대로 직행해 버렸다.

자신의 집으로 가지 않는 오토바이를 보자, 그녀는 큰소리로 "오토바이에서 뛰어내리겠다"고 소리쳤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뛰어내릴테면 뛰어 내려 봐! 나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널 데리고 살테니까'  집으로 가는 그 짧은 순간이 살아온 세월 중 제일 멀고 긴 시간 같았다.

집이 눈 앞에 들어오자, 가슴에선 무엇인가 확신에 찬 느낌이 들었다.
집 마당으로 오토바이가 들어서자 방 안에 있던 가족들이 일제히 문을 열어 본다.
함께 있던 조카들은“우와! 우와!”하고 소리를 지르며 환호성을 내지른다.

이제는 어디로 도망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리의 사랑은 저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처럼 서로의 가슴속으로 말없이, 보이지 않게, 그렇게 반짝이고 있었다.
우리의 운명은 여기서 결정되고 말았다. 어찌됐든 과년한 처자가 자기발로 왔든 남의 발로 왔든 남자집까지 찾아 왔다면, 내일부터 소문이 날텐데, 그것으로 끝난 것이지.

그렇게 결혼을 하게 됐고, 신혼생활은 청산도에서 부모님과 함께 했는데 전제조건은 들밭에 나가 농사일은 하지 않고 집안 일만 하는 것이었다.
그럴만도 한 게, 그때만 해도 시골 여성들의 로망은 고된 농사일로 하루해를 보내는 부모님을 보고 자라서인지, 농사일이라면 지겨울 법도 했기에, 아내의 그런 말은 십분 이해되었다.
농사일을 하게 않는다는 약속은 지켰지만 시골에서 집안일하고 시부모님을 모시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짐작은 했지만 무척 힘든 눈치였다.
저녁이면 피곤해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신혼 같지 않은 신혼생활을 지내다가 2년 후 독립된 생활을 하게 됐다.

한 가정을 이루며 여기까지 살아온 삶의 괘적을 되짚어보니 수 많은 사연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그 수 많은 사연들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어떤 글이 좋을까 생각하다가 문득 논어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見利思義, 見危授命, 久要不忘平生之言, 亦可以爲成人矣.(견리사의, 견위수명, 구요불망평생지언, 역가이위성인의) 이(利)를 보면 의(義)를 생각하고(청렴을 강조)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던질 수도 있으며 곤궁한 세월을 오래 견디면서도 평소의 약속을 저버리지 않는 자는 또한 완성된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찌, 필부들의 삶이 완성된 인간의 경지에 이를수 있겠는가?
부족하더라도 올곧은 마음으로 살아야겠따고 옷깃을 여미어 본다.

숨가쁘게 달려온 세월.
어느덧 결혼한 지 벌써 31년이 지나 버렸다.
아직까지 결혼 기념일을 한 번도 챙겨보지 못했는데 이번 기념일은 기억했다가 조그만 선물이라도 준비해야겠다.
무뚝뚝하고 멋 없는 남자라고 여지껏 핀잔을 받아 왔는데 선물을 받아 본 아내의 반응이 자못 기대된다. 사랑하오. 한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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