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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까지 돈을 물고, 고등어로 퇴비 쓴 '청산도 파시'

[청산 특집] 1. 청산도 '파시' 이야기

  • 김형진 기자 94332564@hanmail.net
  • 입력 2019.01.05 08:42
  • 수정 2019.01.05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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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윤은 신비롭기만 했다. 심장을 살살살 살살살 거리는 게 마치 자신이 황금빛 비단 물결 위에서 노니는 듯 했다. 붉은 노을이 내려온 것도 아닌데 어쩜 저리도 황홀한 빛이 생겨났을까?
그런데 유심히 살펴보니 온몸이 황금색으로 빛나는 금빛 잉어가 저 혼자서 물결 위를 살랑거리며 주위를 온통 황금빛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 빛에 홀렸는지 광윤은 자신도 모르게 두 팔을 벌리며 물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금빛 잉어가 놀래지도 않고 자신의 품안으로 쏙 들어오는 게 아닌가!
아! 평생에 이리도 상스러운 꿈은 처음이다고 생각할 쯤 어제 저녁, 우철 아재의 말이 떠올랐다. “광윤아! 내일 파시가 끝나고 겁나게 좋은 판이 있씨야! 꼭 와라잉!”
‘그래. 기분좋은 꿈이다! 오늘 판은 모조리 싹쓸이 할 것 같아!’

어느 새 광윤의 발길은 파시의 꾼들이 모인다는 불근잔등으로 향하고 있었다. 점방의 뒷방을 열자, 우철 아재가 보였다. “어여 오니라!” 반색했고, 방안엔 절친 승길이 말고도 낯선 이가 한 명 더 보였다. 다부진 몸매의 외눈박이 태복이었다.
그의 한쪽 눈이 왠지 꺼림칙하다고 느끼는 순간, 우철 아재는 “신경 쓰덜마! 인상은 저리뵈도 책을 좋아해 나중에, 어디 도서관장이라도 할끼야!”
그러자 광윤 승길은 한 목소리로 "네~  군수님, 아니 우철 아재요!" 판은 삼봉으로 시작됐다.

첫 판부터 치는 족족 그야말로 광윤의 판.
패가 쩍쩍 붙는다. 육백, 시카, 청홍단, 구사, 비조리, 칠띠... 거기에 판을 모조리 정리하는 용코까지... 몇 번씩이나. 마음먹은 데로 생각하는 데로... 한참 끝발이 오를 쯤, 승길은 “인자 판도 어지간해분디, 썼따(두장 보기)로 돌려 불믄 으짤까라?” “우철 아재요? 으짜요?” 옆에 있던 광윤은 그것두 괜찮다 싶어 “그람! 그라구 하세”

썻다로 판이 돌았지만, 그 판 또한 삼봉과 별반 다르지 않게 광윤이 압도적이었다. 몇 판 돌아가지도 않았는데 우철 아재랑 승길은 이미 밑천이 바닥 나고 개평이라도 얻을까 구경에 열중이었다.

둘 사이의 판은 끝날 듯하면서도 끝나지 않는 지루한 공방이 오갔다. 쉽사리 끝나지 않아서인지 답답함이 일자 광윤은 태복의 판돈을 흘깃 바라봤다. ‘저것만 봐 버리면 끝나 불것는디 징허게두 안 끝나네잉’

그 순간 화투패 한 장이 광윤에게 던져졌다. 조심스레 까보니 장(10). 광윤은 ‘그래! 장땡이나 한 번 들어와 블어라! 그라믄 끝나분다' 그러며 태복의 눈을 흘깃 봤다. 묘한 그의 미소와 마주친 후 나머지 한 장을 받았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패를 쪼였다. 뒤장의 패가 보이는 순간 움찔! 심장에서 천둥이 치는 소리를 들었다.
직감. ‘이 판이 끝이꾸마’

호기롭게 자신의 돈을 모두 걸자, 이어 태복의 음흉하면서도 싸늘한 음성이 들려왔다.
“더 받을 수 있것소?”
태복이 돈을 모두 털어 넣은 후, 허리춤에 찬 전대를 확 풀어 헤쳤다. 그곳엔 5백원짜리 지폐가 한뭉텅이! 족히 100만원도 넘은 돈다발.(당시 라면 1원)

구경하던 승길이 촐싹대면서 “오매, 오매, 판이 제대로 붙어 불었구만! 둘이가 완전 짱짱해분갑다!”고 하자, 광윤은 “인자, 더는 돈이 없는디...”
그 말에 태복은 “그라믄 집문서라도 받아 줄라요! 아니면 씨름판에서 이긴 도장마을 어업권이라도 걸등가! 쫄리믄 되지시고!” 집문서와 도장마을 어업권이란 말에 움찔 거렸지만 광윤은 물러설 수 없었다. 어젯밤 꿈을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좋소! 그라믄 걸지라!”하고 호기롭게 화투장을 바닥에 내던지며 “장땡이요! 이거 누르믄 우리 집문서를 가져 가등가 아니믄 도장마을 어업권이라를 가져가등가!”

눈길이 판돈으로 향할 때, 태복의 술이 거해졌을 때 나타나는 음성이 들려왔다.
 “거, 미안하게 됐씨다. 난 38광땡이요”
태복의 패를 확인하는 순간 광윤은 끝도 모를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아! 왜 그런 꿈을 꾸었을까? 왜? 왜?’ 마음속에선 한없는 자책. 세상을 모두 잃어 버린듯한 허망함. 억장이 무너진듯 한 가슴. 돌아오는 배안에선 차라리 저 바다에 몸을 던지고 싶었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을 따라오는 그날 밤의 달빛이란 참 무정타고 느낄 쯤 어느 덧 집 앞 밖에 이르렀고.
'어라 이상타! 지금은 모두가 잘텐데 환하게 붉이 켜진 게'
헛기침을 두어 번 내뱉자 그 순간, 옥남의 목소리 “와라잉, 왜 이제 오씨요! 아가 받아 내느라 무지 욕봤소! 이제부터 징짜 아빠니께 열씸히 사시요! 열씸히!"
그 말에 광윤의 눈가에선 뜨거운 눈물이 샘물처럼 흐르면서, 다시는 화투짝을 잡지 않고 열심히 살았다는 그런 이야기로 끝이 나겠는데...

과거 청산도는 개들까지도 지폐를 물고다닐만큼 돈이 많이 돌았고, 한 재산을 잃을만큼 큰 노름도 성행했으며 다시 파시로 한 재산을 이룰만큼 대부호도 많았다고.
청산도 고등어 파시는 교과서에 실릴만큼 유명해 현재 청산도 파시거리엔 1930년대 동아일보에 전면으로 소개된 청산도 파시 이야기가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청산도 고등어 파시는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부터 시작돼 해마다 6월부터 8월까지 고등어 군단이 몰려오면 청산도 도청리 포구에 파시가 섰다. 부산이나 일본의 대형 선단과 소형 어선들 수 백 척이 드나들고 수천의 사람들이 북적거려 도청항은 해상 도시로 변모했다고.

선구점과 술집, 식당, 여관, 이발소, 목욕탕, 시계점 등의 임시 점포가 생겨 선원들을 상대로 장사를 했다. 외지에서 온 상인들은 주민들에게 세를 주고 점포를 빌렸다. 그 중 가장 많은 것이 색시 집이었다. 술을 파는 색시 집에는 조선 기생뿐만 아니라 일본 기생들까지 있었다. 고등어 선단은 한 번 출어로 수십만 마리의 고등어를 잡아왔다. 운반선으로 다 처리 하지 못할 정도로 많이 잡히면 일부는 바다에 버렸다.

도청리 앞바다는 고등어 썩는 냄새에 골머리를 앓았다. 주민들은 고등어를 얻어다 소금 간을 해서 간독에 저렸다. 그래도 남는 고등어들은 어비(퇴비)로 만들어 쓰기도 했다. 지금처럼 생선이 귀한 시절에 고등어 퇴비는 전설 같은 이야기다.

일제 패망 후에도 계속되던 고등어 파시는 1960년대 중반 고등어가 고갈 되면서 막을 내렸다.
하지만 삼치들이 몰려오면서 삼치 파시가 맥을 이었는데, 청산도 앞바다에는 운반선 20여척이 늘 대기 중이었다. 당시 청산도는 완도보다 더 중요한 해상 교통의 요지였다. 완도 사람들까지 청산도로 술을 마시러 오곤 했다. 지금은 채 3천명도 못되지만 1973년 청산도 인구는 13,500명이나 됐다.

그러나 지나친 남획으로 삼치 또한 씨가 말랐고 1980년대 중반 청산도 파시는 막을 내리면서 다시 한적한 섬이 됐는데, 현재는 슬로시티 청산도로 알려지면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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