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장보고 차문화와 도자기 문화

[독자 기고] 우홍채 / 삼성화재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9.01.19 21:58
  • 수정 2019.01.19 22:00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홍채 / 삼성화재

차(茶)란 차나무 잎을 달이거나 우려서 마시는 음료를 말한다. 커피나 생강차, 쌍화차 등의 일반 차는 대용차(代用茶)라고 한다.

다반사(茶飯事)라는 말이 있다. 차(茶)는 일반적으로 우리의 생활 속에 친숙한 음료라는 뜻이다. 그리고 차와 필수적으로 병행되는 것이 차를 담는 그릇이다. 그냥 찻잔이라 한다. 차와 물이 만나는 다관(茶罐) 사발이다. 차인들은 물과 그릇을 기리는 특별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릇에 도(道)를 담는다.’라는 말은 차가 도라는 뜻이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다예(多藝)라고 하여 예술의 경지를 말하고, 한국에서는 다례(茶禮)라고 하여 예를 지키는 의미이며, 일본은 다도(茶道)라고 하여 찻잎을 따서 달여 마시기까지 다사로써 몸과 마음을 수련하여 덕을 쌓는데 치중하였다 한다.

차와 찻잔은 청해진의 장보고시대 이전에는 우리나라에 없었다. 장보고에 의해 828년(신라 흥덕왕 제위 3년) 차가 들어 왔으며 찻잔을 수입 하였고, 만드는 기술까지 도입 되었다.

찻잔은 질그릇이나 나무그릇으로 사용해 왔다. 그러나 청자 찻잔과는 비교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차와 도자기는 예술이라 표현 되엇다. 도자기는 장보고에 의해 신라에 수입 되었고, 신라가 망하고 고려로 넘어오면서 ‘고려청자’라는 이름으로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보면 아니 욕심을 부리자면 ‘고려청자’ 이전에 ‘장보고청자’라고 하여야 할 것 같다. 청자를 도입한 인물이 장보고이기 때문이다.

문헌이나 학자들의 연구서에는 차와 찻잔은 장보고 문화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당사자인 완도에서는 주체가 우리인 줄을 몰랐던지 방관 했던지 우리의 소중하고 무궁 발전 할 수 있는 문화를 타 지역에 빼앗기고 있는 것 같다.

828년전 장보고 선단에 의해 신라로 들여와 지리산에 심었다는 차나무는 하동과 보성에서 자기들 문화라고 ‘하동 차 축제’, ‘보성 다향제’, 가 열리고 있다. 그리고 도자기는 ‘이천 도자기 축제’, ‘강진 청자 축제’라고 하여 고려청자를 근본으로 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하였을까?

글쓴이는 금번 장보고연구회에서 주체하는 ‘1177주년 장보고 추모 다례제’ 행사에 참석 했다. 의미있는 행사라 참석 하였으나 조금은 아쉬웠다. 진행 과정을 보면서 ‘왜? 완도에서 이런한 행사를 하는가?’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 헌사를 하시는 기관장들도 행사에 참여한 군민들도 행사의 의미를 아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다례제는 흔히 있는 행사가 아니다. 장보고 다례제는 우리 완도만이 할 수 있는 행사라는 의미를 담아서 확실히 전달 했어야 했다.

아쉬움은 남았으나 이러한 행사를 하였다는 것만으로 안위하고 큰 의미를 부여했다고 본다.

완도가 가지고 있는 여러 문화는 한국 최고의 문화가 아닌가 싶다.
경제 성장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물류시장의 개척이 1200년 전 장보고에 의해 이루워졌고, 일본 침략 7년 전쟁을 고금도에서 마무리 지었으며, 보길도에서 어부사시사가 만들어지면서 가사문학이 무엇인가를 제시 하였으며, 유배 문화에서 완도가 설군 되었고, 항일운동의 초석이 되었던 부와 복의 고장 완도다.

하루 빨리 도와.군과.문화원(장보고연구회)이 머리를 맡대고 장보고 유적사업의 큰 그림이 그려져 해양 문화를 재현해야 하겠다.

이제부터라도 군민들에게 아니 전 국민들에게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적극 알려야 하며 완도가 설군된 지 120년이 넘었으니 완도의 어제를 거울삼아 미래를 개척 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 한다.

완도인들은 교육을 받고 또한 스스로 배우고 익혀 청해인의 긍지를 갖게 된다면 앞으로 우리 완도는 빙그레 웃는 섬을 넘어 활짝 웃는 완도가 될 것이다.

저작권자 © 완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