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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 잔, 수신(修身)의 시작!

[무릉다원, 은선동의 茶 文化 산책 - 49] 김덕찬 / 원불교 청해진다원 교무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9.01.20 06:40
  • 수정 2019.01.20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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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찬 / 원불교 청해진다원 교무

“오장제거무비초(惡將除去無非草), 호취간래총시화(好取看來總是花)” “싫어서 장차 제거하려 하니 풀 아님이 없고, 좋아서 취하려 하니 보이는 것 모두가 꽃이로구나!” 새벽 좌선 중에 문득 떠오른 법구이다.

실은 증산선생의 말씀이지만 이미 열반하신 스승님께서 공부인으로서 표준삼게 주셨던 말씀이기도 하다. 즉 앞 문장은 공부인에게 있어 법에 대해 잠시의 여지도 없이 칼같이 지키는 용맹하고 철저한 공부인의 심경으로, 자칫 스스로에 대한 상이나 법에 대한 상이나 작은 틀에 붙들리는 경우를 경계하는 뜻이다. 또한 뒤의 문장은 좋아서 좋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이미 모든 경계를 그렇게 볼 수 있는 심법의 상태이다. 이순(耳順)의 경지가 바로 그러하다. 성자의 눈에는 세상이 온통 성자적 성품을 가진 존재로 보고, 그렇게 대하신다.

진리의 심층적인 면에 대한 각성, 즉 열린 눈으로 보아 세상의 모든 경계나 모든 현상 역시 진리 그 자체임을 아는 경지라고 할까? 다시 말해 이미 공부가 익어있는 성자들의 심법과 시각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본래 고요하고 두렷하여 일체의 분별과 집착에 묶이지 않는, 바로 그러한 본연성에 대한 각성과 그 상태의 심법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대상들을 대하는 것이어서, 일체가 다 소중하고 귀한 존재이기 때문에 굳이 꽃이란 표현을 빌렸을 뿐이다. 세상에 좋고 안 좋고, 싫고 미움이 어디 있으랴? 그저 감사하고 감사할 뿐인데!

비유하여 차를 만드는 제다법으로 정리해 본다. 처음으로 차를 만들려고 할 경우, 차 만드는 방법에 대해 자세히 알아야 하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100% 모방 하듯 철저히 연습해야 한다. 채엽한 찻잎의 상태와 양, 불의 온도, 솥의 재질과 크기와 두께, 덖고, 비비고, 건조하고, 마무리하는 방법 등을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 이 과정 외에 다른 방법들은 철저히 배제되고, 그 과정과 상황에 고집하는 단계가 바로 앞 문장의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더욱더 연습하고 연구하여 계량하고 재지 않아도 될 정도로 완전히 익어지면, 주어진 환경과 상황에 맞게 조절하는 역량이 생기게 된다. 큰 차이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기존의 방법과는 다른 새로운 방법들을 터득하여 얻게 되고, 어떠한 상황에도 적용할 수 있는 제다법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쯤 되면 어떤 상황이나 어떤 재료로도 그에 맞는 완성된 차를 능숙하게 만들 수 있게 된다. 바로 이 단계가 뒷 문장의 단계이며, 어떻게 만들어도 훌륭한 차를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차이는 매우 명백하다. 초등학생에게 차 만드는 방법을 쉽게 잘 설명해 주면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하여 그 방법에 고집하고 그것이 다 인줄 알지만, 대학원 석박사 정도이면 나름 자유자재로 차를 만들어 내는 것과 같다.

차 한 잔속에 숨어 있는 이러한 소식을 깊이 들여다보고 반조하는 것, 차인에겐 기본적이면서도 필수적인 수신(修身) 덕목의 하나라고 말하고 싶다. 차는 세상과 소통하여 하나 될 수 있는 도구이자 바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오롯한 찻자리의 차 한 잔 속엔 우리네 삶의 묘리가 모두 들어있음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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