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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의 어름에

[완도 시론] 정택진 / 소설가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9.01.20 06:44
  • 수정 2019.01.20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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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택진 / 소설가

흘러가고, 스쳐가고, 떠가는 것. 그래서 물 같고 바람 같고 구름 같은 것. 그것들처럼 한번 흘러가면 다시 올 수 없는 것. 흘러가되 소리가 없고, 스쳐가되 감각되지 않고, 떠가되 보이지 않는 것. 들을 수 없고 느낄 수 없고 볼 수도 없지만 그러나 엄연히 우리 곁에서 함께 가는 것. 지금 이 순간도 나를 스쳐가고 있지만 그러나 그것을 알 수 없는 것. 그러다가 저기 어디쯤에서 뒤돌아보면 분명히 나를 스쳐 지나갔고 그로해서 나는 그 지점에 있게 되는 것. 내가 내 발로 온 게 아니라 그것이 나를 지나가서 거기 있게 되는 것. 바람처럼 단속적인 것이 물처럼 연속적으로 이어져 마침내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것. 전체가 만들어지는 순간 외려 그 존재는 끝이 나게 되는 것…….

그런 것이 있다. 어떤 존재가 주는지는 모르지만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그런 것이 있다. 갖고 싶지 않아도 가질 수밖에 없고, 더 달라해도 줄 수 없는 그런 것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시간’이라 부른다.

볼 수도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는 그것을 인간은 ‘시계’라는 기계를 만들어 계량화했다. 육십 개의 초가 모이면 한 개의 시간이 되고, 스물네 개의 시간이 모이면 하루가 된다. 그러면서 그것들은 더 큰 단위로 묶이어 나간다. 서양의 세밀한 개념들이 들어오기 전에 우리는 ‘아까침에’나 ‘이따침에’나 ‘해거름’에 같은 말들로 그것을 가리켰다. 동양이 됐든 서양이 됐든 인간은 그런 방법으로 시간을 자신들의 세계에 편입시켰다.

시간은 인간 안에 있다. 한 존재가 생기면서 시간은 그 안으로 들어가고, 그 존재가 숨을 거두면 시간은 그에게서 빠져 나간다. 그가 태어나기 전에도 시간은 있었고, 그가 가고 난 뒤에도 시간을 있을 터이지만, 그가 없는 시간은 그의 것이 아닐 것이므로, 그가 없이 흘러가는 시간은 그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종말은  그의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안에 있었던 시간의 끝을 의미한다.

분절되는 그것들은 똑같은 길이가 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똑같은 단위의 시간도, 어떤 순간은 겁나게 길게 느껴지지만 어떤 순간은 엄청나게 짧게 느껴진다. 싫은 인간과 보낸 하루와 연인과 보낸 하루가 같은 길이로 인식될 리는 없다. 객관적 차원에서는 같을지 몰라도 주관적 차원에서는 시간은 절대 같을 수가 없다. 양의 측면에서뿐 아니라 질에 있어서도 그렇다. 화려하고 찬란했던 시간은 더 있어도 좋은 시간이고, 시련으로 고통 받는 시간은 얼른 지나가야 좋을 시간이다. 주체 밖에서 시계로 측정되는 것과 주체 안에서 머리에 인식되는 시간은 완전히 다른 층위의 것이 되는 것이다.

양력은 새 꼭지를 시작했고, 음력은 섣달그믐을 앞두고 있다. 해로 묶든 달로 묶든 시간은 제 행로를 갈 것이지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것들 안에서 생을 영위할  수밖에 없다. 나와 함께 흘러가는 나의 시간들이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것이 됐으면 좋겠다. 남이 보면 똑같은 일 초 같지만 나에게는 한 시간의 의미가 되는 그런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흘러가는 것을 멈출 수는 없겠지만, 흘러가는 그 새다구새다구쯤에서 나의 시간들을 돌아보는 그런 짬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의 시간들을 더 빛나고 아름답게 만들 수 있었으면. 나의 시간이 멈출 즈음, 인간의 시계가 가리키는 것보다 수백 배 수천 배 더 산 그런 시간이었으면. 그런 시간이었다고 내 자신을 위로할 수 있었으면.

새로운 꼭지가 시작되기도 했고, 아직 안 시작되기도 한 어름에, 살갗을 불어가는  시간을 느끼며 해보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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