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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님의 결기가 그리워지는 3·1운동 100주년

[완도 논단] 김정호 / 본보 발행인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9.02.28 18:12
  • 수정 2019.02.28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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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 본보 발행인

마지막 조선 총독의 악담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1944년, 마지막 조선 총독이었던 아베 노부유키.
이 자는 한국에서 전쟁 물자를 지원하기 위해 인력과 물자를 일본으로 착취해 갔다. 조선총독으로 부임 후 전쟁수행을 위한 물적·인적 자원 수탈에 총력을 기울였다. 또 징병·징용 및 근로보국대의 기피자를 마구잡이로 색출했으며, 심지어는 여자정신대 근무령을 공포해 만 12세 이상 40세 미만의 여성에게 정신근무령서를 발부했고, 이에 불응 시는 국가 총동원법에 의해 징역형을 내리기도 했다.
이 자는 미국이 우리나라에 들어오자 총독부에서 마지막으로 항복문서에 서명하고 우리나라를 떠나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비록, 우리는 패했지만 그렇다고 조선이 승리한 것은 아니다. 장담하건데, 조선민이 제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최소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결국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했지만 현재 조선은 결국 식민 교육의 노예로 전락했다. "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결국 학교 교육을 통해 우리의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경쟁관계 속에서 서로 싸우고 헐뜯는 가치관을 만들어 놓겠다는 이야기인데, 오늘날을 빗대보면 공동체를 파괴하겠다는 정말 무섭도록 소름끼치는 말이다.

한겨울 요도 깔지 않고 잠을 잤던 의로움의 결기
때는 1927년 5월.
한반도를 식민지배하고 있던 일제는 한반도 남쪽 끝에 있는 작은 학교를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이 학교는 일장기를 걸지 않았고, 또 일본 천황에 대한 충성맹세를 하지 않았다. 일제로서는 아주 눈엣가시같은 학교였다. 당연하다는 듯이 강제 폐쇄 결정을 내렸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학교가 있는 지역 주민들은 물론 일본에서까지 대규모 항일시위가 일어났다. 일제는 당황했다. 한반도 남쪽 끝, 작은 섬에 있는 작은 초등학교 문을 닫겠다고 했을 뿐인데 예상치도 못한 강한 반발에 부딪혔으니까.
이 학교의 이름이 소안학교다.
작은 섬에 세워진 소학교였지만, 그냥 단순한 소학교가 아니었다. 소안도는 예로부터 중국과 일본 사이 바닷길의 중요한 길목으로 지리적으로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던 섬으로 바다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답게 일찍부터 자주의식이 강했다. 임진왜란 당시 이충무공을 도왔고, 동학농민운동 때에는 해안가 동학의 중심지 역할을 하기도 했다.
소안학교 아이들은 저마다 작은 쪽지를 바짓단에 숨겨 집에 가져가서는 가족들과 함께 밤새 외우곤 했는데, 쪽지의 내용은 독립군 군가로 일제의 압박 속에서도 꿋꿋하게 독립군 군가를 외우며 독립을 꿈꾸던 작은 섬이었다.
그 작은 섬에서 항일정신의 뿌리 역할을 했던 소안학교는 인근 완도, 진도 지역뿐 아니라 제주에서도 유학생이 몰려들 정도로 남해안의 항일기지로 유명했다.
특히 1930년대 섬 주민 3,000여 명 중 무려 800명이 일제의 집중 감시 대상이었으며 주민들은 순사가 어떤 것을 물어도 어떤 말도 하지 않는 불언동맹(不言同盟)으로 맞섰다. 특히 섬 주민들은 이웃이 감옥에 가면 그들을 생각하며 한겨울에도 요를 깔지 않고 잤고, 손가락을 베어 투쟁의지를 다진 사람도 여럿이었으며 ‘해방의 섬’이라는 말이 부끄럽지 않은 곳이다.‘라는 말이 있었다.
오죽했으면 대한민국은 용서해도 완도는 용서하지 않겠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함경도 북청, 부산의 동래와 더불어 독립운동이 가장 강성했던 곳으로 항일 운동의 3대 성지로 불리고 있다.

완도사회, 갈수록 물질에 탁류로 양심과 정의의 실종
오늘날, 완도를 지탱하고 있는 원동력과 완도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를 보자면 면면이 내려온 선조들의 의기로운 정신과 이들의 항일 정신이 기초하고 있다.
지역의 빛나는 역사는 후세들에겐 그 맥락과 방향으로 힘을 주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목표와 가치가 어디로 가야할 지를 알려주는 이정표와 같다.
하지만 현재 완도 사회는 갈수록 인간의 가치와 미덕이 실종 돼 가고 있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정도로 양심과 정의가 마비되어 가고 있다. 물질과 자본주의의 탁류에 의해 힘을 잃어 삶의 의미와 가치가 스스로 굴종돼 가는 모습이다.
선조들의 항일정신이 점점 퇴색돼 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선조들의 그 정신은 결국, 부조리와 굴종에 대한 자유함이었고 자유인이 된다는 건, 노예의 삶에서 벗어나는 일이었다.
아무도 복종하거나 굴종하지 않으면 독재적 힘은 어떠한 권력도 발휘할 수 없다. 그가 지닌 권력은 모두 자발적 복종자들이 바친 것들이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지역사회의 불의와 부당함, 그리고 불공정함에 대한 선조들의 결기가 너무나도 그리운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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