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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멀리 보내랴 키다리로 자라는 영리한 들꽃

[완도의 자생식물] 83. 처녀치마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19.03.06 16:28
  • 수정 2019.03.06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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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들은 시절이 안 좋을 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생명이 위태로우니 자식을 빨리 번창한다. 반대로 적정한 온도와 물이 성할 땐 태양열을 받아 세포의 분열과 성장으로 몸짓을 키운다. 겨울 동안 마음의 씨앗을 깊이 묻어 두었다가 때가 되면 싹을 틔운다. 고난의 계절을 겪지 않고 핀 꽃들은 결코 꽃이라고 할 수 없다.

조금만 둘러봐도 우리 야생화가 그렇다. 낙엽이 수북이 쌓인 계곡의 양지바른 곳에는 겨울을 지내고도 푸른빛을 가진 잎사귀를 바닥에 깔고 연보라색 꽃망울을 짧게 내밀고 꽃을 피우는 처녀치마. 잎이 땅에 방석처럼 넓게 퍼져 있는 모습이 처녀들이 다소곳이 앉아 있을 때 치맛자락이 퍼져 있는 모습과 비슷하여 ‘처녀치마’라고 이름 붙여진 야생화다.

이른 봄에 눈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복수초, 앉은부채, 앙증맞은 솜털로 온몸을 보온하고 꽃을 피우는 노루귀와 함께 찬 기운이 가득한 산골짜기에서 만날 수 있는 꽃이기에 반가움은 더할 수 없이 크다.

처녀치마는 늘 푸른 여러해살이풀로 우리나라 각지의 높은 산의 계곡과 능선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땅속줄기는 짧고 수염뿌리가 많아 어려운 환경에도 살아 남을 수 있다. 곧게 선 꽃줄기는 꽃을 피운 후에도 점점 자라서 약 40cm 정도 자란다. 꽃 색은 처음에는 분홍에 가까운 붉은 색이나 점차 진한 보라색으로 변하며 꽃이 질 때는 하얀 분홍색으로 퇴색해 간다.

그러면 겨울을 난 어미 잎은 열매를 맺을 때쯤이면 칙칙한 갈색으로 썩어 새로운 생명체를 위해 기꺼이 밑거름이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몇 년을 두고 새싹이 나오고 꽃을 피우다가 모체가 죽을 때에는 잎을 땅바닥에 납작하게 붙이고 잎 끝에서 새로운 새싹이 난다. 자손을 영원히 번식하는 강한 생명력을 갖고 있다. 처음에는 추위를 이기기 위해 거의 땅바닥에서 짧게 나온 꽃줄기가 열매를 맺을 때쯤이면 40cm 이상 자라는 것도 씨를 터트릴 때 보다 멀리 보내기 위해서라니 처녀치마는 아주 영리한 들꽃임에 틀림없다.

모든 식물은 철 따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이렇기 위해서는 고난을 통해서 연단이 필요하다. 수없이 담금질하여 새롭게 마음을 다진 이유는 스스로 고난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너무 풍족한 시대에 정신 차리지 않으면 점점 쇠락해 가는 것을 역사에서 많이 봤다. 태양을 받은 처녀치마 잎에서 다양한 영양소 만들어 낸다. 이런 순환 속에는 고난의 징검다리가 반드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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