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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이해 · 주민공동체운동만이 ‘지속성’ 담보

지나친 상업화 슬로시티 정신 해쳐 부작용…권역별 관광자원도 중요하지만 철학 되새겨 봐야

  • 박주성 기자 pressmania@naver.com
  • 입력 2019.05.07 07:47
  • 수정 2019.05.07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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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시티운동은 1999년 이탈리아 로마와 피렌체 사이에 있는 포도주 주산지인'오르비에토시'에서 처음 시작됐다. 기존에 만연한 '패스트푸드'를 거부하고 깨끗하고 신선한 먹거리로 만든 음식을 먹자는 '슬로푸드 운동'이 출발점이었다.

이는 자연스럽게 슬로푸드의 이념과 철학, 가치를 기반으로 한 슬로시티 운동으로 번졌다. 이 도시에서는 대형마트와 즉석식품을 판매하는 패스트푸드점이 사라졌고, 급기야는 대기오염과 소음을 야기하는 자동차 유입도 줄면서 도시민의 삶의 만족도는 높아졌다.

슬로시티운동은 기본적으로 '느리게 살자'는 취지를 표방한다. 속도와 생산성만을 강요하는 빠른 사회에서 벗어나 자연과 인간, 환경이 조화를 이루며 즐겁고 여유롭게 살아가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슬로시티 지정으로 관광객이 몰려 지역민의 삶이 풍족해지고 지역 전체가 관광 브랜드화하는 효과도 얻었다. 반면 부작용도 뒤따랐다. 슬로시티가 상업화에 이용되는 등 단순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자조 섞인 한탄이 나왔다. 최근 7년 사이 일부 지자체가 슬로시티 재인증 심사에서 탈락하고 보류된 것도 이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슬로시티에 대한 인식 부재가 이같은 부작용을 초래한다.

특정 지역의 아름다운 경관 때문에 슬로시티 인증을 해줬는데 경관과 어울리지 않는 숙박시설이 난립하는 등 지역민의 소득 증대에만 혈안이 되는 사례가 많아 안타까운 것이 현실이다. 슬로시티의 기본철학을 이해하고 시민 주도로 운동을 이끌어야 한다는 인식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슬로시티의 개념을 제대로 인식하고 '주민 공동체 운동'으로 승화해야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슬로시티는 주민 삶의 질을 풍요롭게 만드는 매개체가 돼야 한다. 몰리는 관광객 탓에 주민의 피로도가 배가되는 것은 슬로시티가 지향하는 바가 아니다. 또한 슬로시티 운동은 주민 주도로 운동을 이끌어 스스로 삶의 만족도를 올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시 행정과 주민협의체 간의 유기적인 협력이 필요하고 슬로시티의 가치와 철학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상업화로부터 우리의 전통자산을 지켜내기 위한 보존노력이 절실하다.

많은 시·군이 슬로시티에 주목하는 이유는 표편적으로 '느림의 미학' 실천을 통한 주민 삶의 질 향상과 슬로시티 가입을 통한 도시 또는 마을의 이미지 개선, 한 발 더 나가 '관광 활성화'까지 도모해보자는 것이다.

슬로시티 지정을 받으면 많은 관광객의 방문으로 도시 상권이 되살아나는 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 있다. 급격한 관광객 증가는 상업화를 부추겨 자칫 독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는다. 청산도도 슬로시티 가입 이후 관광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와 불법 펜션, 바가지요금 등으로 오히려 몸살을 앓고 있다.

슬로시티국제연맹 심사는 까다롭다. 지정을 받았더라도 5년마다 이뤄지는 재심사를 통과해야 슬로시티 도시로서의 명성을 이어갈 수 있다. 상업성이 지나치거나 슬로시티 정신과 철학, 가치를 고수하지 못하는 도시는 재인증 심사에서 가차 없이 탈락시키기 때문에 현재 가입된 도시들도 항상 긴장감을 늦출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슬로시티 이념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힘쓰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느림은 단순히 빨리 빨리의 반대말이 아닙니다. 환경, 자연, 시간, 계절과 우리 자신을 존중하며 느긋하게 사는 것입니다." 국제슬로시티 운동의 창시자 파울로 사투르니니는 '느림'을 이렇게 정의했다. 슬로시티의 취지는 돈벌이가 아니라 경쟁과 다툼으로 내몰지 않는 진정한 삶을 위한 '생활혁명'이라는 것이다.

슬로시티로 지정된 국내 자치단체가 '느림의 미학'을 존중하기도 하지만 일부 지자체는 지나친 상업화 추구로 그 정신을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슬로시티가 '느림의 미학'을 추구한다면 국내 자치단체는 아직 '돈벌이'에 이용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 때문에 슬로시티 정신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일자리와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한국형 슬로시티'를 조성해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슬로시티 운동의 철학을 이해하고, 주객전도된 보존보다 관광이 우선인 인식 전환은 시급하다고 볼 수 있다.

완도군은 지난 2007년 청산도가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로 인증되고 2013년 재인증을 받았으며 지난 4월에는 완도 전 지역으로 확대하는 슬로시티 인증을 받았다. 완도군은 지난해 말 한국슬로시티본부 관계자와 실·과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슬로시티 완도 전 지역 확대에 따른 기본계획 수립 용역 보고회’에서 권역별 관광 자원과 슬로시티 운동 확대로 주민 삶의 질 향상과 잘 사는 지역 만들기를 위한 방안을 수립하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 슬로시티 운동이라는 것은 주민 삶의 질을 풍요롭게 한다는 기본철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관광에 치중하고 보존으로 인식전환이 되지 않으면 공염불이 되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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