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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에 연분홍 치마가 휘날리더라

[완도의 자생 식물] 94. 무꽃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19.05.19 15:03
  • 수정 2019.05.19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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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꽃을 꽃으로 여기는 굴참나무는 슬프다. 하얀 제비꽃은 하늘로 날아가 만날 일 없어 슬프다. 배추꽃 노랗게 물들인 들판에 착한 마음들이 지나갈 길이 없어 슬프다.

배고픈 무꽃 옆에 가난한 애인이 없어 슬프다. 이제 고향으로 돌아와 돌담을 쌓고 있는 사연 많은 아저씨의 마당에 무꽃이 두 그루가 피었다. 마당에 풀 한 포기도 없는데 그 무꽃만 세월의 흔적을 기억하고 있다. 10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한다면서 뽑지 않는다고 하는 아저씨.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마당 텃밭에 무꽃이 만발했다. 마당 가에 돌담을 쌓으면서 흙을 뒤집다 보니 10년 전에 떨어진 무씨가 발아된 것 같다고 한다. 돌담 옆에 무꽃이 눈물겹게 피어 장독대를 바라보고 있다. 어머니의 따뜻한 마음을 닮아서 눈물로 다시 핀 무꽃. 그 마음을 닮은 아저씨도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이제 꽃이 지면 씨를 받아 텃밭 그 자리에 다시 심어볼 생각이라는 아저씨도 부모가 되어 자식들을 기다리고 있다. 산에서는 연초록 나뭇잎이 여린 마음으로 부풀어 있고 산 넘어 소쩍새가 봄밤의 슬픈 가슴의 창을 울리게 한다. 흰 무꽃 옆에, 노랑 배추꽃 옆에 노랑나비 흰나비 모두 다 여기에 모여 있다.

무꽃과 배추꽃이 너무 흔한 꽃이라고 그냥 지나쳐 버리는데 꽃을 자세히 보니 이만큼 아름다운 꽃도 드물다는 생각이 든다. 흰색 바탕에 약간 보라색이 띤 꽃잎은 연록의 잎사귀를 다 넣고 싶은 마음이다.

부드러운 연록의 꽃대 끝에서 하얀 꽃이 될 줄 그 뉘가 알았겠는가. 마음을 씻고 또 씻어 봐도 무꽃만큼 깨끗해질 순 없을 것 같다. 무꽃은 남성스럽게 수수하게 피었다면 배추꽃은 수다스럽게 피어 여성들의 웃음보따리를 풀어 놓는 격이다. 눈을 감으면 언제라도 어머니 자장가 소리에 자그마하게 흔들리는 무꽃이 있다는 걸 바쁘다고 잊고 살았다. 호미 들고 무꽃 옆에서 풀을 매는 어머니. 그 흙냄새로 피어 있는 무꽃. 맑은 바람결에 풍성한 배추꽃. 기쁨과 새로움을 기러 내는 어머니.

이렇게 서로 어우러져 봄 산이 되고 만다. 연록의 산에서 내려오는 아주 연한 마음처럼 노래하고 싶어진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수수한 흰 꽃을 좋아한다고 했으면 진작 내 안에 무꽃이 들어와 있을 텐데. 그러나 세월이 무꽃을 알려주니 진정 내 앞에 꽃은 꽃이 아니다. 격랑을 헤쳐 온 이들만이 다시 새롭게 핀다. 세월이 흘러 인생이 쓸쓸한 곳이 많아졌다. 그러나 그곳은 전에 없었던 꽃들이 피기 시작한다. 무꽃이 그런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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