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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내리는 아침, 가슴으로 젖는 오롯한 삶

[완도의 자생식물] 95. 홀아비꽃대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19.05.20 09:00
  • 수정 2019.05.20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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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이 없는 홀아비꽃대는 모든 것을 가슴으로 전한다. 보슬비 내리는 아침이면 머리에 젖지 않고 가슴으로 젖는 오롯한 삶이 온전한 가슴이 가슴으로 마음이 마음으로 흐르게 한다. 산에서 피는 꽃들은 한참 뒤에서야 다시 생각나게 하는 녀석들이 많다.

그만큼 산에 피는 야생화들은 그리 화려하지 않으면서 긴 여운으로 피어 있는 꽃들이 많다. 홀아비꽃대도 역시 그런 꽃이다. 나뭇잎들을 통과하는 연하디 연한 햇빛이 한동안 머무는 곳에서 아주 단순하게 피어서 숲속의 여백도 조화롭게 만들어 놓고 있다. 약간 축축한 물의 기운이 있는 데에서 다른 산꽃이 부드럽게 올라 있을 때 하루 만에 꽃대가 자라 피는 것처럼 홀아비꽃대는 생기 있게 숲속의 분위기를 주도한다.

홀아비꽃대라는 이름은 꽃잎 없이 꽃술만 핀다고 해서, 1개의 꽃 이삭이 촛대같이 홀로 서 있기 때문인가? 아니면 막대 모양의 흰색 꽃이 듬성듬성 달리는데 그 모습이 며칠간 수염을 깎지 않은 홀아비의 궁색 맞은 모습을 닮았다고 홀아비꽃대라고 부르는 건가.

정확한 연유는 알 수 없다. 남도에서는 홀아비꽃대과의 옥녀꽃대라고 부른다. 차이는 꽃밥에서 구별된다. 홀아비꽃대는 한기와 독, 습한 기운을 없애고 피를 잘 돌게 하는 등 여러 증상에 효능이 있다고 알려졌다. 또한 타박상을 입었을 때 신선한 홀아비꽃대의 잎을 찧어서 환부에 바르면 효과가 있다고 한다. 산등성에는 철쭉꽃이 열정의 빛으로 가슴을 물들이고 있다. 막바지로 가다 서는 봄 끝자락에서는 아쉬운 눈물을 토해내는 모란꽃이 붉다 못해 검게 드러내고 있다. 산골짜기 여럿이 모여 피는 홀아비 꽃들은 간소한 품으로 개울물을 끌어 안고 있다.

온 산이 붉은 만큼 아쉬움도 크지만 산 아래 숲에서는 간결한 홀아비꽃대는 오는 물, 가는 물 자유롭다. 이곳에서는 한마디 은유의 말도 긴 여운을 이어진 사랑이 있기에 독이 없는 그리운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다. 산 속은 간결함과 간소함이 주는 아름다움은 참으로 마음을 편하게 한다. 산에는 그냥 꽃이 피고 지는 일만이 아니다. 여기에는 사랑이 있고 그리움이 있고 시와 음악이 있다.

혼자 산길을 걸어가도 그 주위에 자연은 내 마음의 거울이 된다.
이심전심 서로 대화하는 즐거움은 무한한 상상력을 일으키기도 한다. 홀아비꽃대와 단 1초라도 대면하는 시간이 여운을 남긴다. 모든 것이 지나가 버린다고 하더라도 한 순 간의 아름다움은 영원히 남는다. 남은 오늘은 대면하는 한 순간이 누구와 할지 기다려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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