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5월의 기억

[완도 시론] 배준현 / 고금주조장 대표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9.06.09 16:52
  • 수정 2019.06.09 17:37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배준현 / 고금주조장 대표

5월 1일, 자영업자인 나는 노동자인가? 일하다. 5일, 어린 조카들에게 용돈을 건네다. 8일, 하루종일 마음이 무겁다. 부모님이 보고 싶다. 석가탄신일,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챙겨야 하는 기념일이 많은 오월이다. 그런데, 나만의 하루 하루도 결코 비켜갈 수 없는 오월의 기억들이 다시 가슴을 후비고 있다. 화려한 가운데 드리운 감정의 조각들이 분노와 슬픔으로 아린다. 다름 아닌 광주민중항쟁과 노무현대통령 서거일이다.

 언젠가 5.18 묘역 참배길, 차안에선 박종화가 낭송하는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가 흐르고 있었다. 그 후텁지근한 눈부신 오월을 서늘하게 얼려버렸다.
 총성과 피로 얼룩진 1980년 광주!! 그때 까까머리 시골 중학생이었다. 어느 날 영어수업시간, 선생님은 분에 겨운 듯 침울한 얼굴이었다. "오늘, 너희들의 형, 누나들이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어가고 있다. 잠시 묵념한다. 오늘 수업은 쉰다." 정적이 맴도는 교실, 영문도 모르고 우린 묵념했다. 선생님은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평소와 다른 선생님의 뒷모습, 교실을 휘감는 공기에 우리는 감히 떠들 수 없었다. 말이 없는 수업시간이 그렇게 지나갔다. 이상했던 그날, 궁금증은 광주에서 일어난 일들이 조금씩 알려지며 풀리게 되었다. 이른바 광주사태의 진상은 광주로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알게 됐다.

폭도로 매도되었던 광주사람들, 민주화운동의 영웅이란 명예를 되찾기까지 또 많은 시간이 지나야 했다. 시민들은 지랄탄, 사과탄같은 최루가스를 마시는 게 예삿일처럼 군사독재에 저항하며 민주화운동을 했다. 마침내 저들에게 6.29 항복을 받아낸다. 이제 우리 아이들이 역사시간에 광주민주화운동을 배우고 있다. 오월이 오면 어김없이 그때 고요했던 수업시간이 생각난다. 혈기왕성한 총각선생님은 그날 친구들을 생각하며 울분을 삼키고 있었다. 오월에 밖으로 놀러 다니기엔 우리의 상처가 너무 깊다. 아직도 광주학살의 우두머리들이 당당하게 걸어다니는 세상이다. 실상을 제대로 알리고 책임자들을 똑바로 처벌하고 그들이 고개들고 다닐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우리 몫으로 남아 있다. 내일 모레면 5.18. 계절은 그날을 기억하고나 있는지 햇살은 따사롭기만 하다.

그리고, 5월 23일. 노 무 현 .
가족 아닌 사람 땜에 그렇게 슬퍼할 줄은 몰랐다. 2009년 이른 여름, 49재를 지내는 동안 봉하마을을 다녀왔고 컴퓨터에 달아 놓았던 추모리본을 몇 년동안 떼지 않았다. 그에게서 처음으로 정치인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그가 우리 곁을 떠난 지 10년, 진보와 보수가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세월을 번갈아 지냈다. 깨어 있는 시민의 힘이 세상을 바꾸는 촛불혁명으로 이어졌다. 살아 움직이는 세상이 다시 시작된다. 하지만 지금, 마지막 발악인 것처럼 제1야당이 하는 짓거리가 도를 넘었다.

10년 전에 썼던 글을 다시 옮긴다. 그때 품었던 그맘을 되새기며 정의가 살아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아직도 해야 할 일, 가야 할 길이 멀기에 그가 남긴 소중한 가치를 이루는 길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 노무현. 제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믿어지지 않아서 한동안 멍했습니다. 안타까움에 한없이 눈물 흘렸습니다. 울다가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다정하고 용감하신 분. 당신은 모든 책임을 안고 가셨습니다. 당신에게 너무 미안합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당신, 노 무 현. 이 눈물 거두고 당신이 남기신 위대한 우리의 역사를 꼭 이어가겠습니다. 참을 수 없는 눈물 이렇게 그리워 합니다. 님의 한마디 말, 님의 표정, 님의 몸짓만으로도 그렇게 쉽게 눈물샘을 마르게 했습니다. 그렇게 가슴을 쓸어 안았던 49일. 이제 보내드려야 합니다. 어떻게 님을 보내 드려야 할까요? 그 날. 우리가 해야 할 일 이루었을 때 우리 곁에서 웃고 계실 날 있으려니, 그렇게 보내드립니다. 사랑합니다.」

저작권자 © 완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