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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들아, 느그들은 어디 있느냐

[완도 시론] 정택진 / 소설가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9.06.10 00:43
  • 수정 2019.06.10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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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택진 / 소설가

어찌 일어나 볼라고는 한다마는 딸싹을 못하것구나. 이대로 저세상으로 이냥 떠나가는 건 아닌지 몰르것다. 문턱을 넘어가 전화기라도 들었으믄 쓰것다마는 오므락딸싹을 못하것구나. 발목만밖에 안한 문턱이 큰재 꼭대이만이나 높은 것 같구나. 옆구리에 받치는 이 문턱을 기언질 못 넘어보고 영영 딴 세상으로 가버리는 건 아닌지 몰르것다.

밥을 묵는데 뒷골이 쿡 쑤시든마는 맥이 탁 풀리더구나. 그래서는 그대로 거실바닥에 쓰러졌니라. 창수 속 저 어디에서 무언가가 끓어오르든마는 그것이 입으로 쏟아져 나오더구나. 밥 묵은 거 기알친지 알었는데 그것이 밥이 아니라 피였드구나. 피가 피가, 검붉은 피가 을마나 기어져 나왔는지, 그것이 온몸을 적시든마는 바닥으로 흥건히 흘러들더구나. 입으로 쿨럭거린 피에 몸을 잠근 채 나는 피 속에 누웠다.

뚜렷이 보이던 천장벽지도 조금씩 희미해지는구나. 정신은 아직 갠짐하다만 시간 지나믄 정신도 끄먹해지지 싶구나. 이것이 사람이 죽어지는 것이끄나. 죽는다는 게 이런 것이끄나. 목숨이라는 게 이라고 허망히 꺼져가는 것이끄나.

누가부지 돌아가시자 나한테도 그날이 을마 안 남었다고 생각은 했다마는, 그란볼로 그것이 이라고 급작스래 오끄나. 유제사람들 하나둘 떠난 것 봄시로 나름 준비는 했다마는, 이라고 혼자 노꺼 있으니 허전하고 또 조금은 무섭기도 하는구나. 세상 누구도 같이 가 줄 수 없것다는 그래서 더 적막하고 막막하구나.

사람이 다 살다가 죽을 것이것다마는, 그래도 이것은 아니다 싶구나. 새끼를 낳아 키우는 것이 나중에 어뜬 대가를 받으려는 것은 아니것다만, 그래도 늙은 부모 혼자 두고 느그끼리만 사는 것은 아닌 것 같구나. 세상이라는 게 이렇게 변해서 부모 자식이 떨어져 살 수밖에 없것다마는, 암만 그래도 일년이면 명절에나 두어 번 얼굴 보는 것은 아니지 싶구나. 묵고사는 게 우선이어서 할수없기는 하것다만, 요양원에 넣어놓고 돈 몇 닢으로 때우는 건 아닐 것 같구나. 늙고 병들고, 새끼들 생각하는 마음에서 그것을 받아는 들이것다마는, 부모라고 왜 안 무섭고 안 섭섭하것냐. 늙고 병들었다고 생각까지 병들었것냐. 몸의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는 생각의 숨도 안 끊어지는 법 아니것냐.

내가 이라고 쓰러져 누워 있다고 누가 나를 찾어오끄나. 동네사람 거의가 혼자 사는 할마이인데이 밤에 누가 우리집에 오것냐. 느그들은 바다 건너 저 멀리에 있으니 이 노무 일을 어찌하끄나. 이대로 여기서 숨이 넘어가불믄 이 일을 대체 어채야 쓰끄나. 누집 엄니 혼자 있다 밤새 죽어부렀다고, 새끼 낳아 키워봐야 아무 소양없다고, 남 말 하듯 이녁 말 하며 쑥덕거릴 터인데, 대관절 이 일을 어채야 쓴단 말이냐. 사는 동안 성가신 일들이 있기는 했드라만, 죽는 것은 애당초부터 성가시런 모양이구나.

내 새끼들아, 잉태되면 생명이 되었다가 숨이 넘어가면 생명도 끝이 난다. 날 때는 어미가 새끼의 숨을 머금고 세상에 데려다준다. 그리고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가림막이 되어준다. 그러면 새끼들아, 그 부모들이 떠나갈 때만이라도, 세상살이가 할수없어 같이는 못 살드래도, 그래도 그 부모들이 마지막 숨을 거둘 때만이라도, 새끼들아 그 에미 손 잔 잡아주믄 안되끄나. 그람시로 아짐찬하다고, 세상에 나오게 해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이렇게 살게 해줘서 감사하다고, 마지막 길 조심히 가시라고, 같이 가 드리지는 못하지만 좋은 데 가시라고, 손 잡아 주믄 안되것냐. 생명 있는 모든 것이 가야 할 곳이지만, 한번 가면 영영 못 오는 길이니 생명 있는 모든 것들에게 다 두려운 것 아니것냐. 그러니 새끼들아, 그 마지막 순간만이라도 부모 손 잔 잡어주믄 안되끄나. 그란데 세상의 모든 새끼들아, 대체 느그들은 어디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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