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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디쓴 인고의 눈물이 흐르는 꽃향기[완도의 자생 식물] 99. 노린재나무
신복남 기자 | 승인 2019.06.10 01:05

작은 바람결에도 흔들리는 노린재나무 꽃. 훌쩍 지나가는 산바람에도 눈물이 글썽이는 산 씀바귀. 하얗게 눈물 흘리던 날 이름 없는 푸른 하늘이 와서 너의 푸른 잎사귀를 만지고 있구나.
눈물 많은 시절이 가고 그 속에 시련이 있을지언정 지나가 버린 것들은 모두 다 아름답더라.

산 속 새벽어둠의 장막을 거두어들이는 이들은 산새들이다. 5월 끝자락에 나뭇잎들은 보드랍게 바람을 감싸고 있고 알을 품은 암컷의 광경을 수컷은 고운 노래로 또한 알을 쓰다듬고 있다. 이렇게 동식물이 생동하는 가운데 노린재나무 꽃은 하얀 솜털처럼 산에서 있는 모든 것들을 듣고 있다.

멀리서 찔레꽃 향기가 바람에 씻고 또 씻어도 그 향기는 정결한 마음뿐인데 노린재나무 꽃향기는 바로 앞 선씀바귀 꽃잎에 묻어 쓰디쓴 인고의 눈물이 흐르고 있다. 노린재나무는 노린재나무과에 속하는 나무인데 원래 이름은 노란재나무이다. 알기 쉽게 노란 재(灰)를 만드는 나무라는 데에는 황회목이란 뜻이 있다.

옛날부터 자초나 치자 등 식물성 물감을 천연섬유에 물들이려면 매염제가 반드시 필요하며 가장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나무를 태운 잿물이다. 노린재나무는 전통 염색에 매염제로 널리 쓰인다. 황회를 만들던 나무로 잿물의 색깔이 약간 누런빛을 띠어서 노린재나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불과 백여 년 전만 하여도 천에 물감을 들일 때 꼭 있어야 하는 귀중한 자원식물이었다는데 지금은 명반이나 타닌 등을 매염제로 사용하니 이름의 유래는 잊혀가는 게 당연하다. 빠르게 지나가는 길은 웬만하면 직선이다.

그리고 이 길을 가려면 딱딱하고 단단하지 않으면 갈 수가 없다. 빠른 고속전철도,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기도, 거의 직선에 가까운 고속도로도 그렇게 직선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산길에서는 곡선으로 걸어가게 된다. 그동안 빠르게 지나온 청년을 지나 중년의 마음들은 반드시 느린 인생의 곡선을 가야 한다.

이제 마음을 부드러운 것으로 만나게 하여 노린재나무에 피어나는 하얀 산꽃 옆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세상을 알려면 산으로 가서 느릿한 삶의 기술을 배운다. 거기에서 피는 노린재나무 부드러운 향기를 만지며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나만의 시간과 공간에서 아름다운 마음의 뜰을 만들고 싶어진다. 그 계절 속에 그 꽃을 만지는 데에는 마음의 공간을 넓히는 것이다. 곡선으로 이루어 진 꽃모양이 우리의 삶과 비슷하다. 산길은 서둘지 말고 굽이굽이 돌아가라고 한다. 그러면 마음이 더욱 풍요롭게 된다고.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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