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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길은 로마로, 완도 청년문화는 완도살롱으로!

[청년 완도 특집] 2. 청년창업에 도전하다 <완도살롱 이종인 대표>

  • 박주성 기자 pressmania@naver.com
  • 입력 2019.06.10 04:41
  • 수정 2019.06.10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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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군립군서관으로 가는 가파른 언덕빼기 길로 들어서기 전 예전의 국제서림 건물을 완도에서 어느 정도 살았던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부터 국제서림 건물에 간판도 없는 ‘완도살롱’이라는 가게가 문을 열었다.

‘완도살롱’은 서점과 칵테일바가 공존하는 곳이다. 주인장은 주류와 비주류가 공존하는 곳이라고 표현했는데, 술과 책으로 그대로 해석해도 되고, 사회의 주류와 비주류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 같다. 해석하는 것은 자기 마음이니까.

이 가게의 주인은 이종인 대표다. 나이는 서른 둘에 아직 미혼이다. 완도 태생도 아닌데 서울사람이 완도에 와 서점과 칵테일바를 열었다고 하니 뭔가 있구나 싶었다.

‘완도살롱’의 이 대표는 하는게 많다. 우선 완도살롱의 마담이고, 바텐더에 기획자이기도 하고 축구대표 감독도 해봤던 사람이다. 1인 출판사 운영자이기도 하고 강사이기도... 그래서 이 사람의 정체가 도대체 뭔지 궁금했다.

정체가 도대체 뭔가요?

“완도살롱 운영하는 누구 누구다 그런거 보다, 되고 싶은 건 작가다. 작가라는 타이틀을 바탕으로 강의 조금씩 하고 있다. 다른 일보다 작가로서 일을 긴 호흡으로 하고 싶다. 책 써서 돈 벌어야지 그런 거보다 꾸준히 쓰고 싶다”

그런데 여러 가지를 하고 있어 복잡한 인물 같은데 또 단순하게 정리되기도 하는 것이 이 대표다. 이 대표를 이해하려면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라는 용어를 알고 넘어가야 한다.
노마드는 유목민을 뜻하는 라틴어다. 원래 유목민이란 몽골이나 중앙아시아 등지에서 가축을 방목하기 위해 목초지를 찾아다니며 이동생활을 하는 민족을 의미했다. 건조한 사막 지역에선 가축에게 먹일 풀이 있는 곳이 드물었고, 사람들이 살기엔 척박한 곳이 많았다. 그들은 사람이 살기 좋은 장소를 찾아 계속해서 이주해야만 했다.

이런 유목민을 뜻하는 노마드를 현대의 철학적 개념으로 주요하게 인식했던 사람은 프랑스의 철학자 들뢰즈다. 들뢰즈는 그의 저서『차이와 반복(Différence et Répétition)』에서 ‘노마디즘(Nomadism)’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노마드라는 용어의 철학적 접근을 가능케 했고, 이 단어에 디지털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서 현재 우리가 말하는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라는 단어가 생겨났다.

보통 디지털노마드는 노트북만 갖고 전세계 어느든 떠나 여행하고 일하는 사람으로 이해하면 쉬울 것 같다. 프리랜서가 많지만 대부분,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일을 한다. 이 대표가 추구하는 삶도 바로 이런 디지털 노마드적인 삶이다. 그래서 이 대표는 생면부지인 완도로 내려와 ‘완도살롱’이라는 완도사람들 눈에는 조금 희안한, 서점과 칵테일바가 공존하는 가게를 운영하게 됐다.
 

그렇다고 마냥 좋아 그가 완도로 내려온 것은 아니다. 혁신가 모임에서 자신의 사례 발표한 내용에서 그가 어떻게 완도로 왔는지, 당시 그의 마음과 태도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1년 전 저는 도망치듯 완도에 왔습니다. 정의라 믿고 여겼던 것들이 어떻게 무너지고, 양의 탈을 쓴 늑대들이 어떻게 타인을 속이는지 보는 일이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의 저는 사람이 밉고 세상이 야속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운 좋게도 인구 몇 만에 지나지 않는 이 작은 섬에서 여러 좋은 분들을 만나 지난 한 해동안 과분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

"홀로 지내는 제게 김치를 비롯한 반찬과 음식을 가져다 주시는 분들, 뜬금없는 요청에도 한달음에 달려와 주셨던 분들, 그리고 매일 힘이 되어주는 단골 손님들까지”

“여러분 덕분에 저는 그동안 사람과 세상에 입은 상처를 어느 정도 치유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살롱을 찾아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

완도는 고령화 사회라 노년층 비율이 월등이 높다. 그러다보니 지역의 여러 가지 것들이 노년층 어르신들에게 맞춰지고 예산도 그쪽으로 많이 들어가는 것이 사실이다. 청년들을 위한 공간, 그것에 착안해 이 대표는 국제문구사 낡은 건물 자리에 청년들이 네트워킹을 할 수 있는 공간인 완도 살롱을 만들었다.

처음엔 완도 지역사람들에겐 굉장히 이질적인 문화로 받아들여졌지만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추구하는 그의 마음이 통했는지 지금은 ‘완도살롱’을 사랑하는 많은 팬들이 생기고 작가 초청, 갤러리, 문화모임, 바자회 심야 책방같은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완도청년문화의 커뮤니티 센터로 기능을 하고 있다.

로마가 일찍이 유럽세계의 중심을 이루고 있었던 것 때문에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생겨났고, 이것은 로마의 지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말이기도 했다. 그말을 ‘완도살롱’의 이 대표에게 해주고 싶다. 완도청년문화의 중심은 바로 ‘완도살롱’이고 “완도청년문화는 완도살롱으로 통한다”고.

‘디지털 노마드’의 삶이 환상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디지털 기기만 있으면 어디서라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멋진가. 또 그 정신이 얼마나 고귀한가.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태어나 자본이 가르쳐 준 세상만 바라보다 자본이 만들어 놓은 수의를 입고 죽는 사람이 태반인 세상에서 말이다. 이 대표의 앞날에 끈끈한 사람의 연대가 함께 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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