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옛 선인들이 차를 귀히 여기니

[완도차밭, 은선동의 茶 文化 산책 -67] 김덕찬 / 원불교 청해진다원 교무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9.06.10 14:43
  • 수정 2019.06.10 14:50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덕찬 / 원불교 청해진다원 교무

“천선인귀구애중 지이위물성기절 염제증산재식경 제호감로구전명”(동다송 3송)

“천선인귀, 하늘과 신선과 사람과 귀신, 모두가 차를 아끼고 사랑하니. 진실로 타고난 성품은 기이하고 절묘함을 알겠구나. 염제 신농이 일찍이 차를 맛보아 식경이란 경서에 기록하였고, 제호와 감로로 칭하여 그 옛날부터 전해오는 가장 뛰어난 멋과 맛을 지닌 이름이여!”

염제 신농은 중국(?) 고대의 삼황 가운데 한 황제이고, 농경법을 가르쳐 신농씨라 불렀다. 불을 발견하고, 온갖 풀을 씹어 72가지 독에 중독되었으나 차로써 해독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이런 기록을 보아 예로부터 차의 가장 큰 효능중 하나가 해독작용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제호는 우유를 정제한 것으로, 『열반경』에 보면 소가 우유를 만들고, 우유에서 낙이, 낙에서 생소가, 생소에서 숙소가, 숙소에서 제호가 나온다고 했다. 즉 매우 정밀하게 연마하고 다듬는 공부와 수행의 극단을 표현한 대목이다.

다시말해 차를 만드는 과정에 지극한 정성과 법제의 도를 지키는 과정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만들어보지 않는 이는 알 수 없다. 구증구포의 구를 숫자의 아홉으로 해석하지 않고, 완성수로써 지극한 정성의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 역시 법제의 묘법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이를 결코 알 수 없는 묘경에 대한 표현이다. 이를 두고 표현한 옛글 한 구절을 소개한다.

예장왕 자상이 팔공산에 기거하는 담제도인에게 갔는데, 그 노인이 미리 차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 차를 맛보고 이르기를, ‘이것이 감로이지 어찌 차라고 하리까?’ 하였다 한다.

멀리 역사속을 더듬을 것도 없다. 얼마전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하기 위해서 왔었다. 일하다가 점심을 함께 하고, 식사후에는 반드시 차를 마신다. 물론 외국인 노동자들과도 함께 마신다. 그들은 한결같이 “혹시 꿀을 탔나요?” 라고 묻는다. 심지어 어느 어른님께선 한참 차를 마시다가 설탕을 가져오라 하셨다. 좌중이 놀라 의아해 했는데, 갑자기 설탕물을 만들어 마시더니, “아, 다르구나!” 하셨다. 차에서 나는 달고 부드러운 감칠맛이 설탕맛과 비슷하다 여겨 마셔보았다고 하신다. 그런데 다르다고 느낀 것이며, 그 차이에 놀라셨던 것이다.

그렇다. 법제의 묘를 다하여 지극한 정성의 공을 들여 잘 만들어진 차에서 나는 맛과 향은 제호의 감로맛이 틀림없다. 감히 이르건데 이곳의 청심향과 여래향에서 나는 맛과 향에서도 절묘하게 제호의 감로를 느낄 수 있다. 이는 법제 과정의 정밀한 묘법을 철저하게 따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맛과 향을 알아야만 그 차를 만들 수 있고, 그 깊은 풍미를 아는 인연을 만난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귀하고 소중하다고 여긴다.

때론 이곳 은선동의 공부인들은 종일 그 차를 마시는 경우도 있다. 차 한 잔에 담길 귀하고 소중한 인연을 기다리며! 그런데, 차가 세상에 나오기 전에 벌써 차가 떨어지고 있다. 그 까닭도 세상은 잘 모를 터이다. 마셔도 마셔도 마르지 않는 차 한 잔의 까닭을!                                                 

저작권자 © 완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