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 "변방이 희망이다"

완도군, 지난 5일 영화 <재심>의 실제 주인공 '박준영 변호사' 초청 특강 개최

  • 김형진 기자 94332564@hanmail.net
  • 입력 2019.06.10 15:48
  • 수정 2019.06.10 15:55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6년 대한민국은 ‘박준영’이라는 이름 덕분에 몹시 뜨거웠다.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 사건, 익산 택시 기사 살인 사건의 재심을 청구하며 ‘사회적 약자’들을 돕다가 파산지경에 이르렀다는 박준영 변호사의 이야기가 포털사이트의 소셜펀딩 기사를 통해 알려지면서 그의 이름은 한 편의 시가 되고  한 시대의 양심이 되었으며 대한민국의 정의가 되었다.

짓지 않은 범죄를 자백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을 위해 재심을 청구하고 공권력의 잘못된 판단과 싸워 나가는 박준영 변호사.  모두가 안 된다고 할 때 ‘그래도 한번 해 보자!’고 나선 박준영 변호사는 시국 사건도 아니고, 일반 형사 사건의 재심은 아예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던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뒤엎고 재심 청구를 성공시켰다.
 

그런 그가 지난 5일 고향을 찾았다.
완도 청소년들을 위해 '변방이 중심이다'의 특강차 왔다며 낙동강변 2인조 사건의 장동익 씨(본문 사진 좌측)와 함께 먼저 본사를 찾았다.

장동익 씨는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살기 위해서 불러주는 대로 쓰게 되면서 무기징역. 그후 감옥에서 22년을 갇혀 귀한 청춘을 잃은 억울한 사연이 알려지면서 낙동강변 2인조 사건은 진실이 밝혀졌다.

본사와의 인연은 본보 칼럼리스트 이전에, 과거 재심 변론을 위해 경찰서와 지역민들의 증언을 듣기 위해 완도에 왔을 때, 완도신문과 김정호 대표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전국적인 이슈가 된 무기수 김신혜 사건의 재심 변호사에서 해임된 이유를 묻자, 직업에 대한 윤리 때문에 특별히 해명을 하는 건 맞지 않다고 밝했다.

오후 3시, 문화예술의 전당에서는 완도고 완도수고 학생들과 지역민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그의 특강이 펼쳐졌다.
소개가 끝나자마자, 단상에서 내려온 박 변호사는 좀 더 가까운 곳에서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며 거리를 좁히는 것으로 특강을 시작했다.
변방, 중심지에서 떨어진 곳. 완도는 변방이다. 그러나 희망이다를 말하고 싶다고. 노화종고를 졸업하고 목포대 전자공학과 1년까지도 특별한 학생은 아니었다고 했다.

학창시절엔 법과 정의를 논해야 하는 변호사에겐 치명적일 수 있는 "준법정신이 필요하다"는 가정 통신문까지 받았다고. 이는 뚜렷한 목표의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군대 운전병 시절, 대대장의 차량을 운전하면서 넓은 세상을 보게 되었고, 자신도 한 번 엘리트가 돼 보기 위해 사법고시를  공부하게 됐단다.

가장 허약한 동기로 시작했지만, 지금에 오기까지 그 과정에서 부조리하고 불의한 모습을 보면서 박준영은 바뀌게 되었다고. 대개의 법조인들은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준비를 하지만, 늦게 시작하더라두 결코 늦은 게 아니다면서 사법 연수원 시절, 형사소송법은 늘상 D였지만, 현재는 누구보다 형사소송을 잘하는 변호사가 됐단다.

학창시절 자신의 미래를 위해 점을 친 어머니는 "얘야, 네가 잘하면 크게 되지만, 잘못되면 사기꾼이 된다고 하드라"

성적이란 건, 정해진 테두리 안에서의 순발력일 뿐, 현재의 성적은 중요하지 않다고. 다만 운명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지금의 상황을 변화시키는 노력이 있다면, 운명은 변화된다고.

그리고 영화 재심.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재심은 자신의 모습이 영웅적으로 그려졌지만, 진짜 영웅은 진범으로 추정되는 30대를 검거했던 황상만 전 군산경찰서 형사반장이었다고.

군산경찰서의 재수사 당시, 황상만 반장의 재수사 결심이 없었다면 이 사건의 재심 무죄 판결은 절대 있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러며 왜? 재수사를 하게됐냐고 황 반장에게 묻자, 그는 "불과 15살이었잖아요! 보호자에게 연락도 없이 수사를 진행했는데, 그것이 정의가 될 수 없고 그런 공포와 폭력 속에서 아이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그들의 진실을 인정하는 것 외엔 어떤 방법도 없었죠" "죽을 때 후회하게 될 것 같았죠. 진실과 정의는 아주 사소한 것인데, 중요한 건 그것을 실현하려는 의지와 신념. 그것이 진실이고 정의가 아닐까요"했단다.

그러며 동기 자체가 목적보다 중요할 수 있다고 했고, 오랜 감옥생활을 했던 신영복 선생의 말로 특강을 마무리 지었다. "한 인간의 사상은 감정의 차원에서 모색되어야 한다. 사상은 이성적 논리가 아니라 감성적 정서에 담겨하고 인격화되는 것으로 주장이 아닌 실천된 것만이 자기의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발로 하는 여행이다"며 그게 가장 정의롭고 진실된 여행이라고. 

저작권자 © 완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