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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급변 정국 속 ‘여야 러브콜’…11월 청년회관 건립 나서[완도군청년회-완도신문 공동 청년프로젝트] 완도 근현대사 한축 담당 청년회 역사 찾기
박주성 기자 | 승인 2019.07.12 13:51
청년회관 부지 기존 건축물 철거작업 / 완도군청년회 회관준공기념 특집 회보 '청해진'사진자료

편집자 주> 본 특별기획은 완도군 청년회 창립 40주년을 맞아 완도 근·현대사의 한 축을 담당해왔던 청년회의 역사를 조명하면서 미래적 가치를 함양하기 위한 완도군청년회-완도신문 공동 청년프로젝트이다.
이번 호는‘10.26사태와 신군부 하의 완도군 청년회와 청년회관 건립’을 주제로 완도군청년운동사를 기술해 보고자 한다. 


 청년회 결성 준비위원회가 만들어지고 나중에 초대 회장와 2대 회장을 역임하는 김용웅 회장이 준비위원장을 맡았다. 박정희 정권 기간 동안 사회단체를 마음대로 만들 수 없어서 청년들은 사회단체가 뭔지도 몰랐다고 했다.

 
 “한달 정도 준비했다. 전부 혼자 회칙 만들고 해서 춘기, 정복, 영수, 영식, 성춘 등 그 동생들이 주축이 돼 79년 1월 14일 일요일날인데 당시 교육청 회의실(현재 군립도서관 자리)로 다 모이기로 했다. 돈 있는 녀석들한테 돈 좀 내라고 할라고 했는데 그런 공화당에서 못나가게 했다. 다 안나왔다. 회장할 사람이 없어 할 수 없이 형님이 안하면 자기들도 안한다고 해서 회장을 맡았다”고 김 회장은 당시를 회고했다.  

 그러나 완도군 청년회가 결성된 해는 대한민국 역사상 큰 사변이 일어난 해로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이른바 10.26 사태가 터졌는데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 그해 10월 26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암살된 것. 그리고 정국은 급변하였고, 전두환 신군부가 12.12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다.   

 김 회장의 전언으로는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고 새벽에 1965년 완도군 청년회 회장을 역임한 김동한 회장이 새벽에 자신을 불러 가보니 당 연락소장을 맡으라고 했는데 말을 듣지 않았다고 한다.  

 “청년회장은 정당에 가입 못하게 회칙에 해 놨다. 내가 만든 회칙을 내가 위반할 수 없으니까 내가 어떻게 하겠습니까?하고 못하겠다고 안했다. 내가 성영이를 추천했는데 또 안한다고 하니까 다른 사람이 나중에 하게 됐다. 내 뒤를 이은 3대 회장 황정국 회장한테도 제안을 했었다고 하더라” 

 한편 급박한 정국 변화가 아이러니하게 청년회에게는 유리하게 작용되기도 했다. “청년회 결성 계기가 정치적으로 야당 선거운동이었는데 동한이 형이 여당이 되어 버려서 편을 들 수가 없었다. 청년회는 지역에서 중립적인 입장이 됐다. 야당인 선동이 형도 협조하고 여당인 동한이 형도 협조하고... 결과적으로 모든 세력이 청년회에 협조하는 상황이 됐다”

 야당 성향이 강한 청년회 결성 방해공작을 뚫고 출범은 했지만 청년회의 초기 모습은 초라했다. 당시 교육청 자리 근처 소복식당 2층에 자리를 잡았는데 소복식당을 운영하던 건물 주인이 박창제 씨 동생이라 김 회장이 개인적인 친분으로 빌려 달라고 해 청년회 사무실로 사용하게 됐다고.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을 비워줘야 했다. 당시 소복식당은 장사가 잘됐는데, 청년들이 어떻게나 많이 다니면서 밤낮없이 떠들어 댔던지 주인이 찾아와 “동생아 안되것네. 사무실을 좀 옮겨주소”라고 요청해 구)청년단 건립이었던 중앙시장 건너편 3층 건물로 이전할 수 밖에 없었단다.

 회관준공기념 완도군청년회 소식지 ‘청해진’에 나온 ‘준공식전에 부침’이란 김 회장의 글엔 첫 번째 청년회관을 왜 건립하게 됐는지 나와 있다. 
“지역사회를 위하여 좋은 일을 성실히 수행하려고 애쓰는 저희들의 모습을 이 지역 선배 유지님들께서 인정해 주시어 지난날 이 지역 청년운동의 선봉에 스셨던 김완주, 박창제 선생님을 위시한 선배 유지님께서 회관 건립을 종용하셨습니다”  또한 김 회장은 글에서 “지난해(1980년) 11월 12일 기공식을 마치고 착공에 들어간 저희 회원들은 젊은이로서의 투지는 하늘을 찌를 듯 하지만 막대한 공사비를 생각하면 암담하기 그지 없었습니다”라고 하면서 건립 공사비 해결이 만만치 않았음을 언급하고 있으며, 이어 연결되는 글에서 지역 인사들의 협조가 있었다는 것도 밝히고 있다.  

“...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고충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애향심이 깊으신 이 지역의 선배유지님들은 저희들의 고충을 보고만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실로 뜻밖의 많은 협조와 격려는 저희들에게 이일을 끝내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하게 하였으며 사회에서 거는 청년에 대한 기대와 책임이 막중함을 실감케 하였습니다”

1981년 준공된 첫 번째 청년회관은 그 건물 자체가 옛날 청년단 건물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는데 이전할 청년단 건물하고 실제 땅 주인하고 달라 애를 좀 먹었다고 한다. 청년단은 나폴리 다방 앞 목욕탕이 자신의 건물로, 실제 청년단 자리는 개인 땅인데 말로만 바꾸고 등기는 안바꾼 것. 청년회관을 건립하기 위한 첫 번째 임무는 바로 등기를 바꾸는 것이었다. 거기다 실제 청년단 건물 주인은 3명이 소유하고 있어서 등기 이전문제가 쉽지가 않았다. 청년회에서 일일이 3명의 등기소유주를 찾아서 그 사람들에게 도장을 찍어주게 했다. 등기 이전 과정도 청년회가 법인이 아니다보니 처음엔 안된다고 했는데 김 회장에 따르면 등기소에 후배가 있어서 “할 수 있습니다”해서 청년회 회원들 10명 연명으로 임시조치법에 따라 마침내 청년회 앞으로 등기 소유권이 이전이 이뤄졌다.  (계속) <다음 편에서는 '완도군청년회관 건립과 초기 활동'을 주제로 연재 됩니다.>

박주성 기자  pressman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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