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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스럽게 가시에 꽃핀 운명을 믿게 하는 흰꽃잎

[완도의 자생식물] 104. 돌가시나물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19.07.15 16:19
  • 수정 2019.07.15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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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을 떠나지 않아도 우리의 삶은 그대로 가고 있다. 그 길 위에 있음과 없음을 이름 지어 가면서 풀숲 이슬방울에 속에 내 마음이 노래하듯 읊조린다. 내 등 뒤에도 길이 있다. 내 인생의 절반쯤은 절벽에서도 초원에서도 아름다웠다. 

 그러나 알 수 없는 나의 뒤 보습은 어떤 모습일까. 딱딱하게 굳어버린 뒤 모습이 살아 움직인다. 그러나 실재가 보이지 않는다. 내 앞에 길은 영롱한 별빛이 기다리고 있고 물기 머문 푸른 길이 있다. 평평한 바닥에서도 가파른 절벽에서도 내 앞에선 선악을 가르는 운명 같은 영혼이 있다. 그런데 언제나 한 몸을 이룬 뒤 모습은 부재다. 이미 결정되어 버린 모습이 우리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나의 삶을 통째로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삶을 구체적으로 운명 짓는 사람은 나뿐이다. 

 내가 나를 지나서 영원히 굳어버린 이름 없는 역사. 그것이 있음과 없음으로 가름을 짓더라도 묵묵히 눈물을 참과 가는 길밖에 없다. 한 치도 안 된 내 등 뒤에서 다시 꽃이 피기 위해선 순간순간 사랑할 수밖에 없다. 나의 존재를 확인 하는 일은 지금 뿐이다. 내 앞에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 돌가시나무가 그렇다. 등 뒤에서 운명 같은 만남을 귀하게 여기는 데에는 새로운 역사를 써가기 위해서다. 푸르던 날을 기억하게 하는 것도 오늘 하루 투명하게 살기 때문이다. 바람과 비 그리고 햇빛을 태곳적에서부터 모아둔 돌은 참으로 귀한 역사만 담아놓았다. 그동안 눈물을 흘리며 독을 품은 가시는 아름다운 꽃을 안는다. 층층이 심연을 숨겨둔 틈새에서 강인한 뿌리를 내린다. 돌가시나무는 이렇게 역설적인 삶을 산다. 5월의 향기는 찔레꽃이었다면 6월의 향기는 돌가시나무다. 둘 다 같은 장미과다. 주로 길가에나 돌 위에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서 산다. 돌이 많은 제주도에서 많이 보인다. 

 바닷가 언덕에서 먼 바다를 바라보면서 핀 돌가시나무 꽃은 그리움이 물씬 묻어나온다. 땅에 낮게 엎드려 덩굴을 뻗어가면서 피기에 땅찔레꽃이라고도 한다. 돌가시나무는 가시가 찔레꽃보다 많다. 땅에 가깝기 때문에 천적을 대비차원에서 가시가 많다. 특히 가을에 열매를 보호하는 데에 큰 힘이 된다. 인생이 반쯤 왔다는 것은 뒤를 뒤돌아보라는 뜻이다. 아니, 순간 자세히 관찰하고 내면의 싹을 키우는 뜻이 더 정확한 말이다. 수 십 년 고집스러운 가시나무에도 꽃을 피운다. 돌 위에 실재한 것과 부재한 것들이 함께 슬퍼하고 기뻐할 수 있도록 또한 흔들리는 운명을 믿게 해 달라고 하얀 꽃잎을 안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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