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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아들

[완도 시론] 정택진 / 소설가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9.07.16 14:09
  • 수정 2019.08.04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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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택진 / 소설가

 사람은 부모의 자식으로 나서 살아간다. 그러니 부모의 것들이 자식들에게 대물림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대부분은 부모의 자식이 되고 또 자식의 부모가 된다. 하지만 예외적인 경우도 있는 것이어서, 부모의 자식이 아닌 존재가 생겨나기도 하고, 반대로 자식의 부모가 아닌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좋은 경우든 나쁜 경우든 ‘그 부모의 자식이 아닌 자식’을 우리는 보게 되는 것이다.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이 일반적인 부모의 소망일 것이다. 이때 ‘잘된다’는 것에는 여러 의미가 담길 수 있겠지만, 그래도 그중 가장 먼저는 ‘사람답게’일 것이다. 사람이니까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일 말이다. 큰사람이 되어 뭇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면 좋겠지만, 그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니, 설사 그렇지는 못할지라도 남에게 욕 안 먹고, 남 손가락질 안 받으며  무난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정도가 부모의 바람일 것이다. 사람보다 돈이 우선인 세상이라지만 경제적인 것은 그 다음이지 않을까. ‘사람 나고 돈 났다’는 말에서처럼 ‘사람’보다 ‘돈’을 먼저 꼽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은 나서 크고 살다가, 그러고는 늙고, 죽는다. 그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이 가야 하는 길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가르치는 것들이 수없이 많겠지만, 그중 대표적인 것이 나는 죽음이 아닌가 생각한다. 타인의 죽음이야 세상에 있는 여러 죽음들 중의 하나이겠지만, 혈연이나 부모의 죽음은 나의 밖에서 진행되던 죽음이 나의 일로 인식되는 계기가 되는 것 아닐까. 내 경우는 그랬다. 아우의 죽음을 보며 처음으로 내 죽음을 인식하게 됐고,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나도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됐다. 병석에서 여위어가는 어머니를 보며 나도 언젠가는 병들 것이고, 그러고는 생명이 끝나리라는 것을 더 깊이 인식하게 됐다. 너무도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내 생각의 수평선 멀리에 있던 것이 내 인식의 가까운 들판에 들어앉게 된 것이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DNA가 자식의 인생에 어느 정도까지 영향을 미치는지는 정확히 알려진 게 없다. 어떤 학자는 인간은 전적으로 물려받은 DNA대로 살다가 죽는다고 하고, 어떤 학자는 인간 존재는 그가 살아가는 환경에 의해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도 한다. 상식으로 판단하자면, 유전적인 요소도 있을 터이고, 후천적인 요소도 있을 것이다. 유전적인 것이 큰 작용을 한다 할지라도 나는 솔직히 그걸 크게 보고 싶지는 않다. 인간의 생을 유전적인 것에 의존해버린다면 우리는 얼마나 허무한 존재인가. 우리가, 생각하고, 판단하고, 선택하는 것들이 다 유전적인 것에 의존한다면 나의 독자적인 영역은 거의 없어져버릴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그저 바람에 불려 생겨나, 바람에 실려 살다가, 바람에 날려 사라지는 이슬 같은 존재 아니겠는가. 나는 절대 바람에 모든 것을 맡긴 자 담벼락의 이름 모를 들풀이고 싶지는 않다.

 어떻게 생각할지라도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물려준 유전자 속에서 살고 있다. 이제는 세상에 없는 아버지는 그런 형태로 내 안에 머물러 있다. 그게 아들의 아버지로서의 지금의 자리이다. 그러면 형태로서는 없지만 피로 돌면서 나를 보고 있는 아버지에 대해 나는 어떠해야 하는가. 어려운 일이겠지만 나는 ‘사람’으로 살려고 한다. ‘사람답게’를 고민하며 그 길로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그게 아버지의 유전자를 가진 아들이 아버지에게 할 수 있는 약속이다.

 요즘 어떤 일에 연루되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느그아부지 같었으면 뽈세 끝장을 봐부렀을 거이다.”

아버지 같았으면 목숨을 걸어버렸을까. 아버지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붙어버렸을까. 그랬을지 모르겠다. 그러면 나는 정의감의 측면에서 아버지만 못한가. 아버지보다 뜨겁지 못한 피를 갖고 태어났는가. 그러면서 생각해 본다. 그래도 남한테 크게 손가락질 안 받고, 그래도 남한테 큰 욕 안 얻어먹고 살고 있지 않은가. 세상에 이름은 못 날렸어도, 그래도 어른들 공경하고, 이웃사람들과 의좋게 살고 있지 않은가. 아버지의 이름에 욕되지 않으려고 나름 애쓰고 있지 않은가. 이런 말들로 내 속에 흐르는 아버지의 피를 위로하며 다시 한번 ‘인간다움’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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