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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칠나무 이야기 하나

[완도 황칠 이야기] 배철지 / 향토사학자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9.08.02 12:52
  • 수정 2019.08.02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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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지 / 향토사학자

얼마 전에 완도신문의 박주성 편집국장이 진심인 듯, 흘린 말인 듯, 필자에게 황칠나무 이야기를 연재해보자는 말이 있었다. 그래서 일단 거절 했다. 우선은 거북스러웠다. ‘완도황칠’이라는 작은 책의 잉크 냄새도 채 가시지 않았는데 다시 풀어 써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두려웠다. 

이제는 나이가 제법 들어서 엊그제 일도 또렷이 기억하지 못하고, 이 말인지 저 말인지도 판단이 흐려진 상태가 되었고, 무엇인가를 제대로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아 본지가 일 년 하고도 반년이 더 지났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가 만만해 보였는지 또 권했다. 

그런데 같은 말을 여러 번 듣게 되면 아편처럼 중독이 되는 게 맞는지 어느 순간부터 “한번 써볼까?” 하는 맘이 들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는 스스로 조바심이 나서 “팔월부터 시작하세.”라고 약속을 하고 말았다. 그러면서 이왕 시작하는 건데 ‘완도황칠’의 부족함을 보완하자는 취지로 여기자며 스스로 위안을 하고 말았다. 

오늘부터 시작하는 황칠나무 이야기는 형식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시작하려 한다. 황칠 이야기가 주를 이루겠지만  향토사와 여러 가지 나무의 이야기도 섞일 터이다.  우리가 사는 이 땅 완도는 “약 칠천만년 전 백악기 시대에 화산의 폭발로 생겨났다.” (조선대학교 신인현-완도지역에 분포하는 미문상화강암에 대한 암석화학적 연구)

화산활동은 지진활동과 함께 지구표면에서 볼 수 있는 가장 격렬하고 파괴적인 현상이며 우리의 지구가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된다. 화산은 폭발 당시 뜨거운 용암과 화산재의 분출로 하늘은 뒤덮였을 것이니 그 여파로 지하 세계의 마그마와 육지의 땅이 한데 뒤섞인 카오스의 땅이었다. 

이후 화산 활동은 멈추어 땅은 식고, 비와 바람에 닳고 깎여 바위가 자갈이 되고, 자갈돌이 다시 모래로 변화될 만큼의 장구한 세월이 흘러 바닷가에는 개펄이 쌓였고 육지에는 식물 성장에 필요한 토양이 형성되었다. 그 때는 이미 최초로 종자로 종을 이어가는 겉씨식물인 소나무와 은행나무와 주목 등이 출현 했고, 그 뒤를 이어서 6500만 년 전쯤에 속씨식물인 순기비나무와 개불알꽃, 날개하늘나리와 같이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식물들이 이 땅을 덮고 있었다. 
그리고 황칠나무도 속씨식물이니 당연히 비슷한 시기에 나타났다. 

그런데 살아있는 이 지구는 완도가 생성된 이후에도 여러 번 변했으니, 전남대 교수인 임형탁은 “식물지사학적으로 볼 때 신생대 이후 빙하기와 간빙기의 주기적인 교대에 의해 한랭한 시대와 온난한 시대가 되풀이 되면서 그에 따른 종의 이동으로 인하여 제주도와 토카라 해협 이남의 일본 난대, 아열대 및 타이완에서 황칠나무가 분화되어 제주도를 비롯한 한반도 남서해안 및 도서지역에 분포하게 되었다고 보고하였다.” 

이 주장은 이 나라에서 황칠에 관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두 어른으로 여기는 산삼 연구가 한영채 박사도 황칠나무의 조상격인 종을 일본의 최남단인 가고시마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주장을 했다. 그런데 가고시마와 타이완이라니? 완도에서 직선거리로만 따져도 1,500~1,600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인데 “그 머나먼 섬에서 완도까지 어떻게 황칠나무가 이동할 수 있었을까?” 물론 당연한 의문이다. 황칠나무가 날개가 달린 것도 아니어서 날아올 수도 없고, 흥부가에 등장하는  제비가 보은표 박씨를 흥부에게 물어다 주었듯 황칠나무 씨앗을 새가 물어다 주었을 리도 없으니 또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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