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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찻 자리의 아취!

[완도차밭, 은선동의 茶 文化 산책 -76] 김덕찬 / 원불교 청해진다원 교무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9.08.19 13:36
  • 수정 2019.08.19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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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찬 / 원불교 청해진다원 교무

“향기로운 옥화 차 한 잔 마시니, 양 겨드랑이에서 솔솔 바람이 일어나 신선 되어 선경의 하늘을 날아오르네. 어두운 창공에 밝은 달은 빛나 촛불이 되어 온 누리에 비추고, 또 나의 벗도 되어 주었네. 하얀 구름 넓게 자리 펴고 산허리에 병풍을 펼치는 구나.”(동다송 16송)

이 글은 옥천자 노동이 쓴 칠완다가의 마지막 구절 중 한 부분이다. 위의 옥화는 말차를 격불하였을 때 마치 위에 살며시 얹어 놓듯이, 혹은 피어오르듯이 아름답고 황홀하게 일어나는 포말을 표현한 문자이다. 구슬옥자 옥화, 구름운자 운화, 젖유자 유화라 불리 우는 말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 말차가 얼마나 부드럽고 감미로운지, 그 거품만 마시게 된다. 그렇게 마신 일곱 잔의 차로 양 겨드랑이에서 솔솔 바람이 일어나고, 그 바람을 타고 신선들이 사는 선경(봉래산, 당시는 도교가 널리 유행했던 시대로, 공부의 극단을 이룬 존재를 신선이라 하였고, 그들이 사는 이상향을 선경이라 하였으며, 봉래산이 바로 그곳이다.)으로 가고 싶다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그려낸 대목이다. 즉 칠완다가의 마지막 일곱 번째의 말차를 마시면서 그 감흥을 표현한 구절인 것이다. 영락없이 이곳 은선동의 전경이다. 이른 아침의 안개는 비경이다. 건너편 숙승봉의 머리는 물론이지만 지척인 관내 옆 봉우리들도 보이지 않는다. 또한 포태 마냥 감싸 안은 은선동은 이미 선경으로 맑은 바람타고 갈 곳이 따로 없는 곳이기도 한 것이다. 둘러싼 산허리가 바로 병풍이고, 굽이굽이 돌고 도는 운무자락에 두루미가 날아들고 여기저기 이름 모를 새들의 합창은 세상의 그 어떠한 연주와 공연이 이보다 더 뛰어날까 싶다. 뿐이랴 애써 가꾸지 않아도 이곳저곳에서 자연스레 피어나는 이름 모를 꽃들이 저마다의 온갖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니 이 아니 선경이랴. 이러한 전혀 꾸미지 않는 아름다운 자연의 비경을 배경으로 한 찻 자리가 바로 최고의 찻 자리이며, 그 보다 더한 아름다운 찻 자리의 아취와 배경이 또 어디 있으랴!

“대나무 숲 소나무에 부는 바람, 파도의 물결소리. 찻물 끓는 소리 산뜻하고 시원하고 고요하니 맑고도 찬 기운 뼈에 스며 마음 속 깊숙이 일깨우네. 오직 흰 구름 밝은 달만 두 친구 삼고 도인의 찻 자리, 바로 승의 경지라네.”(동다송 17송)

송풍회우! 차솔로 차를 격불 할 때 나는 소리, 등파고랑! 물 끓는 모습과 소리로 순수한 물이 되면 그 요란했던 물 끓는 소리마저도 고요의 적정에 든다. 이와같이 행다의 묘법에 정성을 다해 마시는 찻자리에 더불어 함께하는 벗이 있으니, 본시 그 자리에 그 수가 많으면 시끄러워지고, 시끄러우면 아취가 사라져 찾자리의 단아함이 없어진다. 그리하여 홀로 마시면 신의 경지라 하고, 둘이 마시면 승이라 하고, 서너 명은 취, 아취가 있으며, 대여섯은 범, 덤덤하고 차분하지 못하며, 일곱 여덟 명은 시라 하여, 나누어 마시며 덕을 베푸는 것이다. 그래서 홀로 마시는 차가 묘미 묘향을 느낄 수 있고, 더불어 마실 수 있는 벗이 있다면 마음까지 나눌 수 있어 더없이 좋다하여 이를 두고 승이라 한 것이다. 그래서 차를 정신문화의 꽃이요, 나눔미학과 소통문화의 꽃이라 한 것이다. 차 한 잔이 갖는 참으로 묘한 절제미와 법도와 중도가 마치 우리네 삶이 추구해야 할 절대선의 가치를 보는 듯 하기 때문에 차를 통한 내면적 아름다움을 가꾸어 가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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