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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비로소 장보고대사 주요 활동지 ‘등주수성’ 과 ‘봉래각’ 방문

<2019 장보고 후예들과 떠나는 중국역사기행>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9.09.20 13:05
  • 수정 2019.09.20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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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산동성 북동부에 위치한 연태시. 이 연태라는 이름은 명나라 홍무제 시기에 만들어진 봉수대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후 서구 열강에 개방된 항구였으며, 조계지였다. 당시에는 '처푸'(Chefoo)라는 이름으로 서구에 알려졌다.

우리나라 서해에 인접해 '작은 어촌마을'로 불렸던 이곳은 청나라 말기인 1858년 천진조약에 따라 개항이 이뤄지면서 산동성의 주요 무역항으로 자리를 잡았다. 현재는 북경의 관문인 천진·단둥 등과 항로가 연결돼 있어 중국의 중심 항구도시로 개발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곳에서 제조해서 이름을 붙인 연태고량주가 잘 알려져 있고, 중국내에서는 와인생산용 포도 재배에 적합한 기후조건 덕택에 와인으로도 유명하다.

위해공항을 통해 입국한 작년과는 달리 청도공항을 통해 입국해 연태시는 잠시 이동경로상 숙소로만 머물고 아침 일찍 일행은 등주수성이 있으며 봉래를 향했다. 

연태시에서 서쪽으로 70㎞ 떨어진 곳에는 장보고 시대 한·중·일을 연결하는 연안항로의 시발점이었던 등주 지역이 있다.(지금 지명은 봉래) 이 지역 중심지에는 등주수성과 봉래각이 위치해 현재까지도 장보고 시대의 치열했던 해상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등주(봉래)는 발해만과 서해가 교차하는 곳이자 장보고 시대 발해와 신라 교역 등을 관장한 곳이다. 수·당나라 시기 중국의 4대 통상항구로 분류됐고, 특히 등주수성은 장보고 시대 중국 최고의 군항으로 불릴 만큼 이곳을 차지하려는 싸움이 치열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총면적 3만 ㎡에 들어선 등주수성은 애초 중국 명나라 말기의 장수인 척계광이 이 지역에 침범하는 왜구들을 막기 위해 건축한 성이지만 현재는 이곳에 들어선 봉래각(사진)과 함께 산동성 지역의 대표적인 '장보고 역사 유적지'로 자리를 잡았다. 지난 1982년에는 중국 국무원으로부터 봉래각과 함께 문화 유적지로 선정됐다. 해안가와 인근 육지를 휘감는 형태로 수성의 웅장함을 뽐내고 있고, 등주수성 내 봉래각은 북쪽 해안가의 가파른 절벽에 위치해 용왕궁·천후궁·삼청전 등 6개의 건물로 이뤄진 고대 건축물이다.
 

산동반도 북단, 봉래시의 북쪽 단애산에 자리하고 있는 봉래각은 연대에서 약 70km떨어져 있는데 연대 근교 여행지 1순위로 꼽힌다. 1,061년에 세워진 거대 건축물이며 황학루, 악양루, 등왕각과 함께 "중국 4대 명루각"의 하나로 중국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이곳은 "인간선경"이라는 별칭에서 볼 수 있듯이 신선사상과도 많은 인연이 있어, 진시황이 이곳에서 불로초를 구하려 했던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으며, 여덟 신선이 각각의 재주로 만경창파의 바다를 건너왔다는 전설도 전해지고 있다. 그만큼 자연경관이 신비롭고, 아름다워 지어진 이야기일 것이다. 한편, 이곳에는 신라시대 의상대사와 선묘낭자의 안타까운 사연도 있다. 당나라에서 학업을 마치고 떠나려던 의상대사에게 선묘낭자가 사모의 정을 전하고 혼인을 간청했는데 의상대사는 이를 거절하고 끝내 귀국길에 올랐고, 결국 선묘낭자는 봉래각 앞바다에 몸을 던졌다고 한다. 현재까지도 '신선의 고장'으로 불리며 인근 해안과 함께 빼어난 절경과 평온함을 자랑하고 있지만, 과거 이 지역이 '한·중·일 연안항로의 시발점'이었던 탓에 장보고 시대에는 중국 내 치열한 '전투'가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발해관터와 고려시대 선박 등 한국의 '흔적'이 근자에 발견되기도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 일행들은 힘든 나머지 등주수성을 관람하고 봉래각엔 다리들이 아파 올라가지 못하고 다음 행선지인 유공도 갑오전쟁 박물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참가대상이 초등학교 어린 학생이다보니 적절한 안배를 하자는 인솔교사들의 의견도 참고가 됐다.
 

다음 행선지는 중국이 일본에게 큰 치욕을 맛본 유공도 갑오전쟁 기념관이었다. 이 갑오전쟁 기념관은 우리 입장에서는 청일전쟁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우리의 동학농민혁명이 계기가 돼 청일 두나라가 한반도의 패권을 두고 싸운 전쟁이다. 

유공도는 위해만 해안선에서 5km정도 떨어져 있는 작은 섬이다.명대에는 왜구를 막기 위한 요새로, 청대에는 해군기지로 쓰였던 이곳은 '침몰하지 않는 전함'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중국 근대역사에서 첫번째로 청나라 정부 북양수군이 탄생한 곳이며 현재도 이곳은 천연 보호벽으로써 동쪽연해 국경의 중요한 군사적 요지로 여겨지고 있다. 무엇보다 유공도는 청일 갑오전쟁의 유적지로, 유명한 황해해전의 격전지었다. 그 전쟁을 기념하기 위한 청일 갑오전쟁 박물관이 섬에 세워져 있어 이 박물관에는 이 전쟁과 관련된 수많은 진귀한 유물들이 전시되고 있으며, 그 중에는 해저에서 발굴된 중량이 20톤이 넘는 거대 함포도 포함되어 있다. 박물관 밖에도 갑오전쟁과 관련된 해군선창과 고포대, 북양수군 충렬비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원시삼림이 잘 보존된 국가삼림공원, 옛 북양수군의 제독관저도 매우 볼만한 곳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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