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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닿고 싶은 맑은 그리움

[완도의 자생식물] 115. 벌개미취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19.09.27 10:01
  • 수정 2019.09.27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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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개미취 사이를 흔드는 푸른 하늘은 가을에 대한 그리움을 만들고 있다. 서로 마음의 손을 내밀며 비어있는 공간마다 풀벌레 노래로 가득 채우고 새벽 기차로 떠나는 나그네 마음을 아는 듯이 눈물겹게 아쉬워하고 있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며 노래하는 숲으로 만든다. 

어느 집안 어느 학교 출신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서로 다른 꽃들 속에 네가 꽃이 되면 내가 향기가 되어 맑은 하늘 아래 서로가 이 세상 주인공이 된다. 벌개미취도 낮은 자리에서 마음을 다지고 뜻을 길러 청청한 하늘과 맞닿을 맑은 그리움의 표상으로 피어있다. 꽃 빛깔은 어디에서 오는지 매우 깊고 오묘하다. 

벌개미취 꽃 그 밑에서 어울리게 하는 잎사귀들과 풀벌레 소리 그리고 계절에서 들려오는 바람의 냄새가 합쳐져서 그때 그 순간만큼만 느낄 수 있지만 평생 이런 만남은 오지 않을 것 같다. 쑥부쟁이 꽃을 보면 빨갛게 핀 물봉선화가 배경이 되어 주고 벌개미취 꽃잎을 보면 가을을 노래한 시인의 마음에서 꽃의 빛깔을 볼 수 있다. 가을의 마음이 흔들리게 하는 쑥부쟁이 꽃과 그 마음을 멀리서부터 손수건을 흔드는 벌개미취 꽃이 비슷하게 생겼다. 

하지만 꽃잎과 잎사귀가 조금 다르다. 쑥부쟁이는 꽃잎이 홀 꽃으로 피고 벌개미취는 꽃잎이 약간 겹치면서 핀다. 쑥부쟁이 잎은 윗부분에는 작고 톱니 모양이 거의 없으며 뿌리 쪽으로 내려갈수록 톱니모양이 확실히 나타난다. 

이에 반해 벌개미취는 잎이 가늘고 길며 뿌리 쪽에서도 한결같은 잎 모양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직선에 가까운 흰 무늬가 있다. 요즘은 벌개미취를 개량하여 길가에 심어놓았다. 들판에 있는 쑥부쟁이와 벌개미취는 가을의 정서를 대표할 수 있는 꽃이다. 

이들은 피어 있는 곳에서는 가을 하늘이 있고 새를 쫓는 허수아비도 그 배경이 되고 있다. 따뜻한 담요 한 장과 속을 든든하게 해줄 국밥을 먹고 싶을 때가 오면 가을이 성큼 찾아오고 만다. 풀꽃 하나, 가난한 꽃잎 하나 달고 가엽게 하늘을 보고 있을 때는 가을이 이미 내 마음속에 와 있다. 

가늘고 여리게 피어 서로의 얼굴을 마주 대한 벌개미취는 문득 멈춰 서서 생각이 깊어진다. 바쁜 세상일수록 꽃잎이 꽃잎을 마음이 마음을 얼룩덜룩 무늬를 그려 넣고 싶어진다. 오롯한 비밀스러운 생이 풀잎에 숨겨놓아다가 다시 가을 들녘에 꽃이 된다. 내일이면 무슨 꽃으로 필까. 아마 키 작은 들꽃으로 핀다면 가장 슬픔이 많은 꽃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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