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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칠나무 이야기 여덟

[배철지의 완도 황칠 이야기 8]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9.10.07 10:38
  • 수정 2019.10.07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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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연안항로’는 중국의 산동 반도 등주를 출발하여 동북쪽으로 발해만의 노철산 하구와 대련만의 동쪽 압록강을 지나 한반도와 중국 요동 반도와 서해안을 따라 남하하여 대동강 하구와 초도 웅진만 강화도 덕적도 등을 거쳐 남양만에 이르는 항로이다. 1천3백3리를 항해하여야할 정도로 먼 거리여서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단점도 있지만 연안을 따라 항해하기 때문에 비교적 안전하게 운항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삼국시대부터 오랫동안 이용되어왔다. 특히 당에 사신을 보내 공물을 바친다든가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의례적인 교류를 할 때 흔히 이 항로를 이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황해횡단항로’는 예성강과 당의 당은포를 연결하는 최단거리의 항로였다고 주장한바 있는데 그 중 어느 항로인지는 추정하기 어려우나 현재의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아래 영흥도에서 2012년 국립 해양 문화재 연구소의 발굴 결과 장보고의 무역선으로 추정되는 선박에서 황칠이 발견되었다. 장보고의 주요 물목에 항상 ‘황칠’이 빠진 적이 없었는데 청자가 아닌 토기에 담겨 있는 황칠로 보아서 장보고의 초기 거래 물목이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아 보인다. 유물중 작은 항아리 안에서 특유의 은은한 향을 풍기는 끈적끈적한 상태의 황칠이 발견됐다.

신라 교역선이 바닷속에서 확인된 것은 한국수중고고학과 신라 해상 활동사 연구에 획을 긋는 성과이다. 경주 월지에서도 신라배가 나왔지만 작은 유람선으로 추정돼 당시 교역선의 원형을 밝히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학계에서는 경주인근 울산항 등에서 중국과 서남해안 각 지역의 교역과 세곡 수송을 위해 숱한 신라배가 출항했을 것으로 추정해 왔지만 연안바다에서 신라배의 실물이 나온 적은 없었다. 더욱이 뱃조각 뿐 아니라 황칠 등의 주요 선적 품까지 다수 확인돼 수중고고학의 지평이 신라까지 확대되는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한다.

유물들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것은 선적된 토기에 들어있는 황칠이다. 황칠은 배를 뒤덮은 쇠붙이의 녹덩어리 속에서 나온 작은 광구소호 넓은 주둥이를 지닌 작은 항아리 토기병의 안에 들어 있었다. 갈색으로 일부 변색되기는 했지만 끈적거리는 원래의 액체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토기에 뚜껑이 닫혀 밀폐된 덕분에 여전히 은은한 향과 끈적끈적한 유기물 상태를 지속 할 수 있었다. 성분 분석 결과 현재 황칠 도료 성분과 80% 정도 일치 한다”는 결론을 냈다 장보고의 해상 제국 청해진의 주요 교역 품중에는 항상 황칠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또 한 정약용의 궁복산의 표현이나 제주도의 법화사의 존재가 바로 황칠과 관련되어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 실증적 사료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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