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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의 기다림이 사로잡는 마음[완도의 자생식물] 117. 여우구슬
신복남 기자 | 승인 2019.10.11 09:34

옛날 어머니들은 머리에 무거운 짐을 이었다. 그 관경은 버스정류장에서, 기차역에서 보였다. 이제는 사라진 풍경이지만 그 모습들이 아련하게 그려진다. 어느 작은 짐이라도 이렇게 기다리지 않고선 옮길 수 없었다. 이마에 땀방울은 서늘한 바람을 기다린다. 억새꽃은 바람이 지나가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것처럼. 우리는 매일 물질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꽃을 피우고 열매는 맺는다. 타인과 매일 만나는 일에도 우리가 모르는 에너지가 필요로 할 것이다. 그 에너지를 상대적으로 배분할 줄 모르는 인간은 나약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사랑을 하는 일에도 겸손해야 한다고. 오늘도 운명처럼 이어온 생명을 바라보는 데에는 끝없는 기다림이다. 콘크리트 사이에서 간신히 이어온 야생화는 막 배를 기다리는 심정일 것이다. 그리움 속에 슬픔은 얼마나 더 견뎌내야 하는 것일까. 이것이 살아갈 수 있는 힘이라면 더 견뎌내야 한다. 여우구슬은 생명력이 강인하다. 아스파스 위에서도 견뎌낸다. 소망하는 꿈들이 너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푸르던 날을 뒤로하고 홍조 섞인 얼굴을 달고 있다. 그동안 엽록소는 한참 태양광을 흡수해 에너지원 포도당을 만들었다. 가을이 오면 빛을 반사해 에너지를 조절한다. 주로 빛의 파장의 파란색과 빨간색을 흡수한다. 빛과 잎에서 만남이 이루어져 결실이 된다니 자연은 물질 교환의 연속이다. 다른 이름은 진주초라고도 불린다. 한방에서는 곡정초, 칠고초라고 한다. 주로 남부지방의 밭이나 들에 자생하며 자귀나무의 잎과 비슷하며 낮에는 활짝 벌렸다가 밤에는 잎을 접으며 열매는 줄기의 잎 아래에 숨어 황색이었다가 점점 자색으로 익어간다. 약효는 해열과 이뇨작용과 방광, 요도, 결석, 간에 좋다고 한다. 여우구슬의 꽃은 작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은밀한 꽃내음이 난다. 조용한 기다림은 내면의 씨앗들이 이어진다. 그렇게 화려하게 내밀지 않고 잎에서, 꽃에서, 열매에서 점점이 이어진다. 땅과 꽃은 그 경계가 없는 듯하다. 얼마나 그리우면 보이지 않게 손을 잡고 있을까. 하나의 경계에서 서로 만나지 못한 일은 열렬한 사랑 때문이 아닐까. 내가 나를 버릴 때 하나가 되듯이 긴 기다림도 그러하리라 믿는다. 밭이랑에서 어머님의 기다림은 당신을 포기하였기에 자식들에게 사랑이 되고 만다. 오늘도 작은 야생화와 마주 대한 것도 간절한 기다림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은밀하고 조용하고 천천히 생각한다. 전에 잡히지 않았던 사물들이 보인다. 이렇게 순간의 기다림은 오늘을 행복하게 한다.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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